글 뭉치
20170805 : 다시 만난 세계 10주년을 기념하며.
2017. 8. 5. 10:29이번 주 한겨레에 기고한 새로운 세상 꿈꾸며 "다시 만난 세계" 는 원래 블로그에 올리려고 했던 글을 조금 손봐서 발표한 글이다. 애초에 신문에 실을 글이라 생각하지 않고 썼던 탓에 원래 글은 훨씬 더 길고 개인적이며 감정적이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추려서 신문에 실었으니 칼럼을 봐 주시면 될 것 같고. 아래는 원문 중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을 적어본 부분이다. (한겨레 칼럼에도 일부분 살아남았다.) 칼럼과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다. 다시 한번, 소녀시대와 다만세의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 - - '다시 만난 세계'의 영문 제목은 'Into the New World'다. 굳이 직역하자면 '새로운 세계 속으로' 정도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곱씹어 봤겠지만,..
20170517 : IDAHOT을 맞이해, 친구 A에게.
2017. 5. 17. 19:19내 친구 A야. 몇 년 전 새로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너의 말에 난 누구냐고 물었고, 그게 너와 같은 지정성별을 지닌 사람이란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전에 이성애 연애를 했었던 너니까, 당연히 그 연장 선상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건 네가 그 사실을 내게 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해줬다는 거였다. 너에겐 내가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이었던 걸까. 내가 네게 그런 신뢰를 받아도 좋은 사람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조금은 황송했다. 네가 네 성적 지향을 이야기해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해서 난 네가 무언가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네가 양성애자인지 범성애자인지 헷갈려 할 때, 네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할지 말지 고민할 때, 커밍..
20170416 : 부활절 묵상
2017. 4. 16. 11:33이제 성당을 나간 세월보다 안 나간 세월이 더 긴 냉담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기분이 미묘하다. 3년만에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앞에서, 참사 3주년에 맞는 부활절이라니. 기분이 이상할 밖에. 예수께서는 부활하시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시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의 복음서 24장 46절부터 48절) 중요한 점. 죄를 용서하기 위해선 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회개는 죄없이 희생되었던 이의 이름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20170129 : We will rebuild, with LOVE!
2017. 1. 29. 14:26작년 연말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직 당선이 확실해진 직후 나는 오랜만에 만취했고, 취기가 가실 무렵 SNS에 이런 글을 썼다. "모든 사회에는 암묵적인 룰들이 있습니다.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하는 것들이죠. 트럼프는 그런 룰들을 깨뜨립니다. 만일 트럼프가 이기면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거대정당이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절박한 바램입니다. (중략) 나는 단지 힐러리가 절대적인 이너시아(관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그녀는 차가운 전사입니다. 은행들과도 연결되어 있구요.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진보적인 것처..
20161127 : 나는 우리가 너무 불쌍해
2016. 11. 27. 12:17김의성 아저씨가 어떤 맥락에서 저 이야기를 했는지 난 모른다. 하지만 김의성 아저씨 말처럼 난 우리가 너무 불쌍하다. 5주 전을 생각해보면, 그 날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어. 그 날은 트랜스포머 차벽이 있었고 의경들이 시위대를 밀어서 인도로 올렸고 물대포가 나올 수 있단 이야기와 공포가 온 군중을 휘감았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게 100만에 육박하는 인파가 되자 갑자기 꼬리를 말면서 평화롭고 경이로운 집회문화 운운하더라. 그러면서도 보는 눈이 적은 농민들 상경길은 무력을 써서 막고 서른 명을 연행했지. 어제 집회의 목표 인원은 200만이었다더라. 누군가는 300만을 말하기도 했고. 어딘가 심장이 두근대면서도 동시에 불편했다. 목표 숫자를 정해놓고 공표해버리면, 그에 못 미치는 인원이 모이면 김이 새버리는..
20161121 : 집회와 관련한 단상
2016. 11. 21. 14:39지금에야 매주 토요일 광화문 캠핑을 뛰고 있다만, 원래 나는 그렇게까지 집회를 많이 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나야 주로 역할이라는 게 집회 나가는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는 역할이었지. "아무도 다치지 마라." 아무도 다치지 말라고 해놓고선 정작 내가 나간 시위에선 무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꺼낸 건 역시 조바심 때문이 컸다. '비폭력'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히느라 애써 '우리는 아무 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걸 열심히 강조하는 모습이 갑갑했기 때문이다. 물론 통계적으로는 평화시위가 그 효과가 더 크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지난 2008년 촛불은 과연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생각해보면 그 통계에 의문이 든다. 하지만 엊그제 의경 버스에 붙은 스티커를 떼준 시민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
20161107 : 맥도날드 애플파이
2016. 11. 7. 05:16요즘 너무 정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오늘은 장안의 화제인 맥도날드 애플파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게 벌써 20여년 전의 이야기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뭐 본디 이야기라는 게 출발지점하고 도착지점만 맞으면 메데타시 메데타시 아닌가. 그때가 아마 5학년 때였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고, 큰누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전까지만 해도 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취업을 한 친척들이 한 명씩은 우리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으니까, 내 기억 속 우리 집 가족은 최소 여섯 명이었다. 이혼이란 단어 앞에서 어찌 반응하면 좋을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내 친구들과 날 불쌍하게 바라보던 어른들의 우려와는 달리 난 딱히 불행하진 않았다. 뭐, 같이 살 때 행복한 이들이 있듯이 따로 떨어..
20160917 :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2016. 9. 17. 23:50사람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완전하다. 우린 때로 탐욕스럽고 게으르고 불결하고 미숙하고 인정에 흔들리거나 혹은 너무 냉정하다. 완전한 이상향에 얼마나 가까운가를 미추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추하다. 그러나 나는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는 완전해질 수 없다. 누가 옆에서 뭐라 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걸 안다. 그럼에도 사람은 끊임없이 완전한 이상향에 도달해 보려는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며 부질없는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어리석은 일인데, 난 그 무모한 어리석음에 사람의 아름다움이 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조금은 제 자신을 긍정하며 추석 연휴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내게 주는 아주 약소한 상. 썸네일용 사진은, ..
20160805 : 어떤 9년
2016. 8. 5. 02:45소대 복도를 지키는 불침번 일병은 토익 단어장을 읽으며 쉬지 않고 원더걸스의 텔미와 빅뱅의 거짓말을 반복해서 틀어놓고 있었다. 논산 입소 이틀째 밤, 입대 직전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들어온 스물 네살의 나는 저 망할 놈의 시디플레이어를 부숴버리고 싶단 충동에 시달렸다. 안 그래도 입대는 뒤숭숭한 법이거늘, 이별한지 만 72시간도 채 안 된 내 심경은 불침번 일병놈이 틀어놓은 노래들 때문에 더 거지 같아졌다. 너 없는 내겐 웃음이 보이지 않아. 눈물조차 고이지 않아. 더는 살고 싶지 않아. 정말 엿 같은 3분 30여초가 흐르고 나면 텔미가 흘러나왔다. 난 엊그제 이별했는데, 그런데 네가 날 사랑한다니 어머나 다시 한번 말해보란 가사를 듣고 있는 내 심경은 입소대대에서부터 누더기 상태였다. 녀석은..
20160521 : 'misogyny'의 역어로 '여성혐오'가 옳은가 하는 질문에 관해
2016. 5. 22. 00:14어떤 분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오남용되어서 실제 여성혐오범죄가 터졌을 때 적확한 타격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던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성혐오'와 '여성혐오범죄'는 엄연히 다르니까. 그리고 용어의 세분화와 적확한 사용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여성혐오라는 표현이 포괄하는 용어로서 부적절하다는 이야기엔 동의하기가 좀 어렵다. Racism은 Racial Discrimination과 Xenophobia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의미의 단어 아닌가. Misogyny 또한 Gender Discrimination과 Femiphobia를 포함하고 있는 의미의 단어일테고. 세부적인 결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고심하자는 지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다만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20160117 : 라이트세이버를 잡으렴. 포스는, 빛은 언제나 네 안에 있으니까
2016. 1. 17. 05:46들어가기 앞서 1 : 저는 덕후를 자처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젠 ‘ 레전드’라는 이름으로 과거형이 된 확장세계관(Expanded Universe. 이하 ‘EU’)에 대해선 단편적인 정보 외엔 접해본 적이 없고, 현재형인 ‘ 캐논’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제대로 접한 의 세계는 오로지 극장판으로 나온 오리지널 삼부작(, , )과 프리퀄 삼부작(, , ),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이하 )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제가 쓴 글이 세계관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혹 제가 명백한 팩트를 틀렸다면, 댓글로 가르침을 주실 것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들어가기 앞서 2 : 이 글 자체가 거대한 스포일러입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7편의 극장판과 TV시리즈 을 아..
20160107 : '문명인이 됩시다' 단상
2016. 1. 7. 02:42아이즈의 신년 기획 '문명인이 됩시다'(클릭)에서 100대 '문명' 캠페인로 세운 내용들은, 그 면면에서 반대할 건 하나도 없다. 죄다 시급한 의제들이다. 100개를 읽으며 하나하나 몸서리를 치곤 했다. 다만 교양의 부재, 야만의 상태를 '이것이 왜 불의인지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리소스가' 필요한 사회적 미몽의 상태, 한국인의 문해력 여부에 대한 루머를 언급해야 할 정도로 상호이해가 부재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한 대목이나,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으로도 건전한 명제들이 촘촘히 공유되고 이를 근거 삼아 진행되는 소통의 토대'를 만들어야겠기에 '고루해 보이는' 걸 안다면서도 '계몽'이란 말을 호출하는 대목은 다소 동의하기 어려웠다. 조악한 견해나마 밝히자면, 한국이 야만의 상태인 건 저 100대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