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기를 좋아한다. 특히나 질 좋은 소를 레어에 가까운 미디엄 레어로 익혀서 씹을 때 육즙과 핏물이 같이 떨어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한번은 오로지 질 좋은 소고기를 먹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를 다녀온 적도 있었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다가 사당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외국에 나가는 것 같은 피로를 느끼는 나 같은 인간이 강원도를 간다는 건 많은 걸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생각도 자주 한다. 나의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건강 문제로 포유류와 조류를 드시지 않으셨고, 이제는 종교적인 이유로 어류와 오신채도 드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건 늘 어려운 일인데, 사찰음식점이나 혹은 불자들을 위한 베리에이션을 제공하는 오래된 중국음식점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에게 허락된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제외하더라도 내 주변에는 페스코-베지테리언(포유류와 조류만 안 먹는 채식주의자. 어류와 계란, 우유 등은 섭취한다)인 친구나, 락토오보-베지테리언(포유류, 조류, 어류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 계란과 우유는 섭취한다)인 친구들이 제법 있다.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한국의 국물요리 중 상당수는 육수에 뭘 넣고 끓였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고, 비빔밥에 넣는 고추장에도 우육분이 들어갈 때가 많다. 비건 레스토랑을 가면 될 일이라고 말하는 건 쉽다. 그러나 밥만 먹으러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일도 같이 도모하려고 만날 때면 좀 일이 어려워진다.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 안에 비건 레스토랑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매번 가능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보통의 식당에도 한두개 정도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 있어도 좋으련만.
그래서 채식주의에 대한 나의 관점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나는 그렇게 살라고 해도 못할 일이지만, 적어도 한국사회가 채식을 하며 사는 이들에게 조금은 더 관대해져도 좋지 않을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열어줄 수 있지 않을까?" 정도.
그런데 최근 들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마존 화재를 본 이후였다. 아마존의 밀림은 이제 위험할 정도로 불에 타고 있다. 밀림을 구성하는 나무와 식물들만 타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곳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멸종위기 동물들과 아마존을 터전 삼아 살고 있는 선주민 부족들도 삶의 위기에 처했다. 화재의 원인 중 상당부분은 가축을 사육할 만한 초지를 만들기 위한 화전개간이라고 한다. 소 키울 만한 초지와 베어서 소 먹일 풀밭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난 고기를 굉장히 사랑한다. 잇새에서 번지는 육즙의 향을 사랑하고, 이와 고기의 단면이 마찰하는 순간 느껴지는 질감을 사랑하고, 그 아름다운 붉은 색을 사랑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기 위해 아마존 밀림을 불싸질러도 된다고 생각할 만큼 고기를 사랑하진 않는 거 같다. 인간이 육식을 마음껏 즐길 권리를 위해 멸종위기종의 생존이 위협에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어느 날 상암의 한 마라탕집에서 양고기를 듬뿍 때려넣은 마라탕을 거하게 먹고 난 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기를 아예 안 먹는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울 것이나, 적어도 고기를 덜 먹는 삶을 살아볼 수는 있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덜 먹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면, 공장식 축산과 그로 인한 환경파괴도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나는 이제 포유류와 조류의 소비를 최대한 줄여볼 셈이다. '끊는다'가 목표가 아니라 일단 '줄인다'가 지향이기에, 라면 스프 안의 고기분말이라거나, 야채김밥 안에 들어가 있는 햄 같은 걸 강박적으로 피해 갈 생각은 없다. 또한 모두가 같이 먹으러 간 식사에 고기가 포함되어 있다면, 가끔 한두점 정도는 먹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본격적으로 소나 돼지를 구워먹기 위해 고깃집에 간다거나, 양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한다거나, 치킨을 시켜먹는 등의 일은 안 하면서 살아보고자 한다.
물론 언젠가 하다가 도저히 못참겠어서 슬그머니 다시 고기를 먹는 삶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완전히 비건'이 되거나 '영구히 채식주의자'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육류 소비를 줄이려 노력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유의미한 효과가 나지 않을까. 적어도 인류가 고기를 더 많이 먹겠다는 이유만으로 아마존에 불을 지르는 초라함만큼은 모면하고 싶단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육류를 대체할 만한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내가 내 채식주의자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한 식당도 더 늘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