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세 번째 관람하며 뒤늦게 깨달은 것. 세번째 문단에 예고편에 나온 적 없는 내용에 관한 경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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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최우식)가 처음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과외 면접을 하러 들어가는 장면, 대문이 열리는 순간 문틈으로 안쪽 계단을 따라 심어진 대나무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는 기우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도 함께 이동하면, 소리도 점점 더 넓어진다. 숲속을 걷는 듯 나뭇잎들이 서로 부대끼며 내는 소리가 기우를 감싸는 가운데, 은근슬쩍 어디서 날아온 건지 알 수 없는 새들의 울음까지 끼어들어온다.
담장 하나 넘어왔을 뿐인데, 박사장네 집 정원은 길거리와는 사운드스케이프부터 완전 다른 공간이다.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고 내부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평화로움을 한껏 채워 그게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아둔다. 영화적인 과장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런 공간이 실제로 가능한지 아닌지 확신이 없다. 저런 규모의 부잣집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아마도 불가능하겠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사운드스케이프를 선사하는 정원’은 대부분의 관객에게도 낯선 경험이겠으나, 기우에게는 더 낯선 경험일 것이다. 기우의 집 안으로는 정말 오만 잡다한 것들이 침범하니까. 집 앞 골목에 오줌 싸는 취객이 시야를 파고들어오고, 골목길 방역하는 소독가스 연기가 후각을 침범하고, 어디서 들어온 건지 모를 곱등이가 부엌 식탁 위를 기어다니고, 비가 오면 빗물이 창을 타고 들어온다. 심지어, 사전에 방문이 논의된 적 없는 민혁(박서준)도 멋대로 집으로 들어온다. 이 부실한 반지하 방은 기우와 그 가족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다. 외부가 끊임없이 내부를 침범하고, 그래서 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 집에서 나가려 발버둥친다.
기우네 집과 달리 박사장네 집은 외부와 내부 사이의 선을 어찌나 명확하게 그었는지, 소리마저 담을 넘나들지 못하는 초현실적인 공간이다. 막강한 부가 그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 압도적인 차이를, <기생충>은 소리로 먼저 알려준다. 참 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