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5일
<시사IN>의 20대 남성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남성이 젠더 이슈에서만큼은 무의식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피해자 정체성을 내면화하면서 여성과 페미니즘 진영을 가해자로 상정하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고, 기사는 이를 징후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피해자 정체성을 탈취해오는 방식의 전략이 비단 20대 남성만의 것인가? 예멘 난민과 무슬림들에 대한 증오발언을 일삼으며 '예멘 난민을 수용하는 한국인'의 프레임을 '강간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한 예민 난민 남성과 억지로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한국 여성' 프레임으로 전환해 피해자의 자리를 바꾸려 들던 일부 20대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기억한다. MTF 트렌스젠더를 향한 증오와 혐오 선동을 조장하기 위해 프레임 왜곡을 시도하는 건 어떤가? 누가 강자고 누가 소수자인지 명확한 '시스젠더 vs. 트렌스젠더' 구도를, '여성 vs. 남성의 몸을 타고 태어났으나 여성이라고 우기는 남성'이라는 구도로 바꿔 피해자의 자리를 탈취하려는 시도. 지금도 트위터에 가면 발에 채인다. 지금 MTF 트렌스젠더들을 향한 사이버불링을 가장 강하게 하고 있는 집단은, 스스로를 '래디컬 페미니스트' 내지는 '리버럴 페미니스트'라고 호명하는 이들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논증에서 이기기 위해 피해자 정체성을 주장하는 행위는 20대 남성만의 것은 아니다. 2019년 현재 논쟁적인 이슈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피해자 정체성을 청구하고자 하는 유혹을 피하지 못한다. 20대 남성 집단이 그 경향을 유달리 가장 강하게 보이는 부문이 젠더 이슈인 것이고. 심지어 이건 20대들만의 전략도 아니다. 모든 세대가 무의식 중에 공유하고 있는 전략이다. 자신들이 가장 불쌍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전략, 흔히 봤던 것 아닌가.
● 산업화세대 (우리가 폐허가 된 나라를 바닥에서부터 다시 일궈놓았는데, 배은망덕한 좌파 젊은이들이 감사한 줄 모르고 우리를 꼰대라고 몰아세운다! 우리가 가장 고생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 민주화세대 (우리가 독재와 폭정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우리의 젊은 날을 오롯이 바쳤는데, 지금의 2030은 역사의식도 없는 주제에 우리를 늘 부패한 586이니 뭐니 부르며 일선에서 물러나라고만 한다! 우리가 가장 고생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 IMF세대 (우리가 단군 이래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 위기에 처한 세대이며, 사회 진출을 앞둔 시기에 나라 경제가 박살이 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암울한 삶을 살았는데, 꼰대들은 우리가 노력을 안해서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고생하고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
물론 20대 남성이 여성 집단 전체를 향한 분노와 공격성, 피해자 정체성 청구 등의 양상을 심하게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건 분명 징후적인 문제이며, 이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세대에서는 정치적, 세대적, 경제적인 측면에서 발현되는 피해자 정체성 청구가, 왜 유독 20대로 내려오면 젠더적인 측면에서 과하게 발현되는지 분석하는 것 또한 엄중한 연구가 필요한 문제다.
다만 나는 피해자 정체성 청구가 한국 사회의 지배적 멘탈리티가 된 이유에 대해 분석하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라는 생각은 한다. 그 악랄한 토양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소모적인 논쟁과 갈등은 세대와 이슈만 바꿔가며 계속해서 반복될 것 같아서 말이다.
2019년 5월 3일
예전에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분석한 기사 중, 일베에 모여서 극우적이고 반인권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청년들 중 상당수는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을 강조한다는 걸 지적한 기사가 있었다. 말하자면 살부의식을 치르는 걸 거부한 채,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 체제에 순응하며 무리 없이 편입되기를 바라는 이들이라는 분석이었다. 그 대목에 유독 오랫동안 눈이 갔다.
살부의식이라는 게, 정말 아버지에 대해 증오와 살의를 불태우며 가정불화를 빚으라는 말이 아니다.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존 체제가 지니는 한계를 직시하고, 자신들만의 기조와 문법으로 시대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일베의 청년들은 '강력한 국가'와 '공정한 경쟁으로 지탱되는 자본주의'라는 기존의 문법을 수호하고 그 구조 안에 편입되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포용하고 권력을 민주적으로 분점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공격한다. 상징적 아버지의 권력에 대항하는 상징적 누나와 형들을 공격하는 일인데, 일베 청년들은 이를 '부패한 586과 무임승차 좋아하는 좌빨 처단을 통한 세대교체'라는 식으로 프레이밍해 이것이 자신들의 살부의식인 것으로 위장한다. 그러나 그건 사실 더 큰 아버지인 '국가'와 '자본'에의 순응인 셈이다.
문제는 그게 단순히 일베만의 멘탈리티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우리 시대가 사이 좋게 조금씩 나눠가진 멘탈리티 같다는 거다.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써내려 가겠다는 상상이나, 시민의 권력을 모아 시장에서 자본이 휘두르는 권력을 시민의 통제 하에 두겠다는 상상 등을 이야기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이들이 있다. 새로운 세상을 원한다고 말은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획득하기 위해 '지금, 여기'의 세상을 혁신할 생각은 너무 불온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 '립스틱 같은 데 돈을 투자하지 말고, 그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번 다음 금권력으로 권력을 획득하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운동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직시하는 것은 좋으나, 그걸 넘어 철저하게 자본주의 논리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자는 발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통제되지 않은 자본이 여성에 대한 억압을 통해 지탱되어 왔음을 간과하는 논리다.
살부를 두려워하는 걸 넘어, 아버지의 곁에서 권력을 나눠받으며 그를 통해 생존을 도모하는 세대의 등장. 그리고 그 멘탈리티의 시대정신 등극. 내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을 마뜩치 않게 여겼던 이유 중에는 그 우려도 있었던 것 같다. '나랏님'을 향한 읍소의 전통이 강했고, 행정수반에의 권력집중이 강한 나라 아닌가.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유사 아버지'에게 청원하는 길을 택하는 모양새 같아서 말이지. (지금은 유야무야된 사이트이지만) 하다못해 청와대 국민청원이 아니라 아고라 서명이었다면, 거기에 100만이 모이든 200만이 모이든 나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서명에 동참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