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를 직접 본 일이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써니의 FM 데이트>를 녹음하러 상암 MBC로 매주 출근하던 시절 라디오 스튜디오 복도에서였고, 두 번째는 그가 팬사인회를 하던 신촌 현대백화점 광장 앞에서였다. 두 차례 모두 그는 이를 활짝 드러내며 웃고 있었고 나는 얼어붙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 마음을 고백하는 게 아무래도 폐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당신의 노래와 당신의 말들을 참 좋아한다고, 그게 순간순간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고. 늘 후회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온다. 그때 그 고백을 했었으면 어땠을까. 하긴, 낯선 남자의 서툰 고백 따위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느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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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에 관해 글을 쓸 일이 세 차례 있었다. 처음은 그가 강은하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읽고 지지의 목소리를 냈을 때였고, 두 번째는 그가 첫 솔로 정규 앨범을 냈을 때였다. 두 글 모두 아이돌 가수에 대한 뿌리 깊은 숭배/멸시의 이분법 대신, 그를 온전한 한 명의 시민이자 아티스트로 평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금은 동어반복이었지만 그 사실이 부끄럽진 않았다.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기회만 허락한다면 몇 번이고 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였으니까.
그는 왕성한 창작자였다. 세상을 향해 제 생각을 들려주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라디오와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 대해 쓰는 세 번째 글 역시 그가 선보인 창작물에 대한 이야기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 번째 글은, 쓸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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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그에게 부당하게 덧씌워진 이미지들을 걷어내고 그냥 탁월한 한 개인으로 평가하자던 나의 글들마저, 혹시 그에겐 짐이 되었던 건 아닐까.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난 그가 어떤 고민과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는지 추측하는 건 무례한 일일 것이다. 섣부른 짐작을 하는 대신, 그가 얼마나 아름답고 섬세한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다만, 그가 더 이상은 많이 외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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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금 이 시간 트위터 대한민국의 실시간 트렌드는 온통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해시태그로 가득하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을 그는, 30대에는 어떤 음악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종현이의_30번째_봄을_축하해 #종현아_덕분에_내_평생이_따뜻해 #종현아_생일_축하해 #HappyJonghyunDay ...
수많은 해시태그들을 보면서, 그때 MBC 라디오 스튜디오 복도에서 그를 보고도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종현 씨, 당신의 음악과 말들 덕분에 많은 순간 위로받았어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