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Mnet의 순위 프로그램 < M Countdown >의 2014년 3월 6일자 방송을 보고 글을 시작하자. 소녀시대의 신곡 'Mr. Mr.'의 무대다.
사실 소녀시대의 신곡 'Mr. Mr.'는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곡이긴 하다. SM이 밝힌 바에 따르면 - 뮤직비디오 데이터가 날아갔다는 이유로 프로모션이 늦춰진 탓에 기대만한 호응을 얻진 못하고 있고, 기교나 애교, 특정 연령대 특정 성별의 청자에게 소구하는 액션을 쏙 뺀 담백한 노래는 '다시 만난 세계' 이후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시도지만 청자들은 조금 갸우뚱하는 눈치다. 나도 '다만세'를 좋아하긴 하지만, 'Mr. Mr.'가 아주 귀에 꽂히진 않는다. 소녀시대의 디스코그라피 중 반칙에 가까웠던 'I got a boy'를 듣고 난 이후여서 그런지, 훅이 생각했던 것보단 그렇게 강렬하진 않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데뷔 7년차 정상에 선 KPOP 걸그룹이 택할 수 있는 지점이 뭐 그리 많았을까 싶긴 하다. 이들이 갑자기 슈게이징을 할 수도 없고, 하이컨셉 일렉트로닉은 이미 동생들인 f(x)가 하고 있고, 지난 앨범에선 마샬라 뮤지컬에 가까운 걸스힙합까지 보여줬으니까. 그렇다고 명색이 소녀시대인데 걸그룹 섹시경쟁의 진흙탕 싸움에 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차라리 지금의 소녀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별 다른 기교 없이 돌직구로 보여주는 쪽이 여러모로 나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곡이 썩 성에 차진 않으면서도, 그 판단에는 동의하는 바다. (이번 타이틀 곡은 작사 과정에서도 소녀시대 멤버들이 많이 개입했다고 한다. 아티스트의 의사가 더 많이 반영되는 방향으로의 변화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래서 소녀시대는 마치 미적지근한 결과물과 대중의 반응 앞에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의 소녀시대만이, SM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마무시한 걸 선보인다. 그게 뭘까. 뭐긴 뭐야 안무지. 위에 걸어둔 < M Countdown > 무대 동영상의 시작부터 42초까지, 사전녹화로 뜬 무대의 인트로 부분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무대 '정면'이라는 개념이 없다. 아래에서 위로 틸트업 한 카메라는 태연을 중심으로 그를 따라 움직이다가, 오른쪽으로 90도 회전한 뒤 태연과 티파니, 수영이 화면 왼쪽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레 서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다시 90도 회전한 카메라는 정면을 바라보며 전진해오는 써니를 잡고, 써니와 바톤 터치를 한 윤아를 따라 270도 회전한다. 제시카의 솔로파트를 따라 다시 270도 회전하면, 보는 이는 자연스럽게 9명이 대형을 이룬 구도를 보게 된다.
'사전녹화 때야 이 정도의 잔기교야 부릴 수 있지. 그게 뭐 대수라고.' 싶겠지만, 이 40여 초에 불과한 카메라워크와 멤버들의 동선 설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 안에서 무대를 체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멤버들의 솔로를 따라서 시청자도 함께 움직이게 만들며, 가장 화려하고 유려한 동선으로 멤버들을 시청자의 시야에 큐레이팅하는 식의 연출. 이 무대 연출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무대 '정면'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만약 < M Countdown >이 3D 방송이었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 되었을 것이다. (난 아직 SBS <인기가요>의 무대를 확인하진 못했다. 하지만 만약 3D 시험방송을 가장 의욕적으로 하는 SBS 무대에서도 이런 식의 카메라워크를 보여준다면, 'Mr. Mr.' 무대는 좀 다른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무대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본 무대가 시작되면 전통적인 의미의 무대 '정면'은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Mr. Mr.' 무대에서 '센터'라는 개념은 자주 변주된다. 현존하는 모든 걸그룹 중 가장 유려하게 대형을 바꾸는 걸그룹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만은 아니다. 2절이 시작되는 부분(동영상의 1분 24초부터), 대형의 제일 끝에 있는 제시카는 무대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남자 댄서와 함께 춤을 춘다. 대형의 제일 가장자리지만, 무대의 '센터'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은 마치 배경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가, 티파니의 솔로에 따라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돌아온다(1분 33초). 그저 멤버가 대형의 가운데에 서느냐 마느냐에 따라 움직이던 시청자들의 시야는, 소녀시대의 안무를 보면서는 확장과 수축을 반복한다. 제일 눈에 안 보이는 게 보통인 대형의 가장자리를, 마치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핀치업하듯 제시카에게 시야를 집중시키며 대형의 실질적 중심으로 격상시켰다가(동시에 다른 멤버들은 몸을 숙여 상대적으로 눈에 안 보이게 했다가), 제시카와 티파니가 솔로를 바톤터치하면서 기존의 대형을 원상복구시키는 안무.
사실 이런 식으로 SM이 무대의 '정면'이란 개념이나 '센터'라는 개념을 가지고 실험을 했던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를테면 2절의 후렴 "I'm so curious! Yeah!" 부분부터 전진하는 방향을 무대의 45도 대각선으로 바꿔가며 '정면'이라는 개념을 뒤흔들고, 멤버들의 안무를 '잔상'이라는 테마로 설계해 동선 자체를 가로로 사용하며 '센터'란 개념에 의문부호를 던졌던 샤이니의 'Sherlock' 무대.
그리고 마치 소녀시대 무대의 8초에서 49초까지처럼 보는 이가 무대 안에 들어가 있다는 체험을 하게 만들었던, 작년의 메가히트곡 EXO의 '으르렁' 뮤직비디오.
일련의 안무들에서 감지할 수 있는 방향성은, SM이 전통적인 아이돌 군무에서 상식으로 여겨졌던 무대 '정면'이나 '센터'라는 개념을 뒤흔드는 시도를 자꾸 하고 있다는 점이다. SM은 보는 이를 무대 안으로 끌어들여 함께 체험하게 만들거나('으르렁', 'Mr. Mr.'), 무대의 정면이라는 개념을 깨고 동선을 확장하며('Sherlock', 'Mr. Mr.'), 전통적인 센터의 개념을 흔들며 보는 이의 시야의 중심을 자꾸 이동시킨다('Sherlock', 'Mr. Mr.'). 이 경향성을 두고, SM이 앞으로의 안무 설계를 단순히 'TV 방송용'을 넘어선 무언가를 위해 계속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내가 오버하는 걸까?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소녀시대의 'Mr. Mr.' 무대 도입부나 EXO의 '으르렁' 뮤직비디오를 3D 환경에서 본다면 어떨까? 만약 평면 TV와 곡면 TV를 넘어서 CJ가 개발한 포맷인 Screen X 처럼 시야에 들어오는 세 개 면을 모두 활용한 방식의 영사기술이 디지털 디바이스로도 이식이 된다면, 그 때 샤이니의 'Sherlock' 무대는 어떨까? 혹은 샤이니의 'Sherlock' 무대를 아레나 공연장에서 본다면, 소녀시대와 EXO의 무대연출을 회전형 무대장치 등을 통해 공연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적어도 SM이 안무를 통해서 준비하는 미래가, 보다 하이테크한 기술이 보편화된 근시일 내의 미래임은 확실해보인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던 '안무'라는 개념을 다시 써야 할 지도 모른다. 사실 그래서 좀 걱정이다. 마치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기점으로 영화평론가들이 "영화를 나누는 기준이 '영화 vs. 토키영화'에서 어느 순간 '무성영화 vs. 영화'가 된 것처럼, 어느 순간 '영화 vs. 3D영화'에서 어느 순간 '2D영화 vs. 영화'가 되진 않을까."라고 걱정했듯, 나 같이 느리고 굼뜬 글쟁이가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까 두려운 것이다. 뭐, 나 같은 것이 두려워하거나 말거나, SM의 안무가들은 열심히 그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다.
노파심에서 적어둔 사족: 이 글은 강명석 현 < ize > 편집장님과 윤희성 문화평론가님께서, 샤이니가 'Sherlock'을 발표하던 무렵부터 꾸준히 제기하셨던 발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네, 선배들의 업적에 수저만 하나 얹어본 글입니다.
ⓒ SM Entertainment.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