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들은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오남용되어서 실제 여성혐오범죄가 터졌을 때 적확한 타격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던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성혐오'와 '여성혐오범죄'는 엄연히 다르니까. 그리고 용어의 세분화와 적확한 사용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여성혐오라는 표현이 포괄하는 용어로서 부적절하다는 이야기엔 동의하기가 좀 어렵다.
Racism은 Racial Discrimination과 Xenophobia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의미의 단어 아닌가. Misogyny 또한 Gender Discrimination과 Femiphobia를 포함하고 있는 의미의 단어일테고. 세부적인 결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용어를 고심하자는 지적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다만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범죄라는 공감대가 퍼지는 게 더딘 이유가 그간의 '여성혐오'라는 단어의 오남용 때문이란 지적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직 Femicide와 Femiphobia의 역어가 개발되지 않아서 이번 사건을 적확하게 지적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사건이 한국사회 안에선 단순히 '여성 대상 강력범죄'라는 가치중립적 용어가 아니라 Femicide로 정의된 첫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분들은 '여성 차별'이라 불러야 할 것을 '여성 혐오'로 불렀던 전략적인 포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셨던데, 개념의 세분화와 용어번역의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차별'이란 역어가 과연 적절한가는 의문이다. 박성호씨는 "여자는 조직생활에 협조성이 부족하다거나, 여자들이 많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파벌을 만들어 싸운다거나, 이와 같은 인식들"을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 예로 드셨는데, 이걸 '여성 차별'이라 불러 버리면 이러한 편견의 결과로 생겨난 제도적 불평등(inequality)으로서의 차별(discrimination)과 그 차별을 불러온 여성에 대한 멸시(contempt)을 죄다 '차별'이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혐오'가 적절한 한국어 번역인가의 문제 또한 나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보는 편이다. 미리암-웹스터 영영사전은 misogyny를 "a hatred of women(여성에 대한 증오)"으로, 옥스퍼드 영영사전은 "Dislike of, contempt for, or ingrained prejudice against women(여성에 대한 반감, 경멸 혹은 뿌리 깊은 선입견)"으로 정의하고 있다. 어원 자체도 그리스어의 '혐오'인 misos(μισος)와 '여성'인 gynē(γυνη)에서 온 거니까. 오히려 거의 정확하게 수입한 쪽에 가깝다.
'여성혐오'라는 용어가 여성에 대한 다양한 억압과 차별, 비하, 대상화를 포괄하기에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난 비교적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misogyny 자체가 광의의 의미였다. 사회학자 Allan G. Johnson은 misogyny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Misogyny is manifested in many different ways)며 이렇게 예를 들었다. "농담에서부터 포르노, 폭력과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느끼도록 교육받은 자기모멸"(from jokes to pornography to violence to the self-contempt women may be taught to feel toward their own bodies.)
이게 원래는 그런 의미가 아닌데 최근 들어 지나치게 광의의 의미가 됐다는 주장도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타르수스의 안티파트로스는 아테네의 역사가 에우리피데스의 'misogyny'를 묘사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에우리피데스)조차 제 아내들은 칭찬한다." (On Marriage. c. 150 BC) 이미 이 때도 여성 전반에 대한 이분법(창녀/성녀) 구도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misogyny가 사용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차별'만'을 짚어서 지적할 때는 'sexism'이란 단어가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여성에 대한 선입견, 편견, 여성 숭배와 여성 경멸이라는 동전의 양면,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 여성에 대한 공격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개념으로서 'misogyny'가 틀린 용어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탈근대'라는 번역이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으로 '포스트모던'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한국어 번역 '여성혐오'의 뉘앙스가 'misogyny'의 함의에 대한 정확한 번역을 방해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미소지니'라고 쓰고 읽자는 용어를 쓰자는 지적도 있던데, 그건 고민해 볼 만한 지점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홍성수 교수님이 하신 말씀에 더 수긍이 간다. 용어 문제와 관련해 밑줄을 치고 싶은 부분은 맨 마지막 문단이다.
저는 hate crime는 증오범죄라고 옮기는게 좋다고 합니다. 혐오의 격정적인 상태가 물리력으로 귀결되는 hate crime의 속성상 혐오범죄보다는 증오범죄가 그 문제양상을 제대로 옮긴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반면, hate speech는 그런 '감정의 강도'가 낮은 차별적 혐오표현 (학술적 진술, 나라 걱정 등으로 위장한 것들)도 포괄해야 하기 때문에, 혐오표현이 더 적절해 보이고요. 다만, 같은 영어 단어를 다르게 번역해야 한다는 부담이 좀 있긴 합니다.
짤은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 2004)의 한 장면. 티나 페이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