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은 평생을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승부사다. 언젠가 이수근이 농담처럼 했던 말 "아니 왜 자꾸 스스로를 이기려고 하세요"는 강호동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축약한다. 예능으로 넘어온 후에도 그는 출연자와 기싸움을 하는 타입의 예능인이었는데, 그는 쇼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쇼맨쉽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홀리고 때론 무리수를 걸었다. 그가 탈세 의혹으로 잠시 방송계를 떠나기 전까진, 그 오래된 전략은 참 근사하게 잘 먹혔다.
그가 다른 어떤 스포츠도 아닌 씨름 선수였다는 점은 굉장히 많은 걸 시사한다. 흔히 씨름을 그냥 덩치와 체중, 완력으로 밀어 붙이기만 하는 스포츠라 생각하지만, 원래 씨름은 균형의 예술이다. 내 힘만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상대의 힘이 작동하는 방향을 읽어 그 위에 자신의 힘을 살포시 더해 상대를 쓰러뜨린다. 재빠른 상황판단과 수읽기가 필요하고, 그 동안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하드웨어의 강인함이 필요하다. 강호동은 이만기와 함께 씨름의 주류가 기술씨름에서 덩치씨름으로 바뀌기 직전을 장식했던, 파괴적인 하드웨어와 지능적인 플레이를 모두 갖췄던 씨름계의 판타지스타였다.
힘으로 위압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능란한 수법을, 강호동은 예능에 고스란히 접목시켰다. 상대가 예능적 재미가 없는 사람 같으면 힘과 기세로 밀어붙여 파이팅을 이끌어냈고, 상대가 기합이 빡 들어가 있는 사람이면 의도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주어 스포트라이트를 주거나 자신의 약점 - 뚱뚱함, 지식의 결여 등등 - 을 일부러 부각시켜 상대를 띄워줬다.
이렇게 명확하게 승부를 보는 종류의 예능인이었기에, 그는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유재석처럼 상대가 아예 예능에 대한 의지가 없을 때에도 어떻게든 상대를 띄워줄 수 있는 사람까지는 되지 못했다. 상대가 모래판에 안 들어 오겠다는데 어쩌겠는가. 그저 당혹스러워 할 밖에. 이것은 그가 본의 아니게 '가망이 없다 생각되는 게스트는 가차없이 버리고 간다'는 평을 받게 만드는 단점이기도 했으나, 지금처럼 예능이 '힘을 빼고' 해도 되는 장르가 되기 전, 다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뛰어들어야 하는 장르였던 시절에는 강호동에게 백전백승을 가져다주었던 전략이었다. 모래판에서든, 스튜디오에서든, 야외에서든, 강호동은 늘 승부를 보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았다.
가끔은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걸 알아도 예술로 떨어지는 판이란 게 있는 법이다. 최근 <우리동네 예체능>은 새 종목으로 유도를 시작했는데, 힘을 겨루거나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동북아시아 그라운드 스포츠라는 점에서 유도와 씨름은 대동소이하다. 심지어는 몇 가지 기술은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종목은 바닥에 모래만 안 깔았을 뿐 강호동 기 살려주기 용으로 채택된 것이란 추정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걸 뻔히 알면서도, 안다리 걸기가 실패하자 밭다리를 거는 척 하면서 발목을 걸어 툭 상대를 넘기는 3단 기술을 아무렇지 않게 해치워내는 강호동을 보는 즐거움은 그를 사랑했던 이라면 포기하기 어려운 도락이다. 최전성기는 25년 전이었고 은퇴한 지 20년이 넘은 전직 스포츠선수지만, 평생 승부를 멈춰본 적이 없었던 이 늙은 승부사는 몸이 기억하는 대로 군더더기나 잔동작 없이 본능적으로 기술을 건다. 그 육체의 약동은 아름답고, 점점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이 '옛날 사람'에게 아직도 건재함을 뽐낼 수 있는 그라운드가 남아 있단 걸 보는 것은 (심지어) 감동적이다. 다시, 예체능을 챙겨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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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말이 나온 김에, 한국 씨름계의 두 판타지스타, 기술과 전략, 하드웨어를 모두 갖춘 토탈패키지였던 두 레전드의 리벤지매치를 보자. 세월은 지나도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걸 입증했던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