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다시 돌림노래처럼 대학독립언론/학생자치언론 이야기가 기성 언론에서 나오더라. 어째 매년 "최근 들어 화제"라고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 학생자치언론의 역사는 거짓말 조금 보태 거의 대한민국 대학의 역사와 맞먹을 만큼 길다. 따지고 보면 국민대학교의 <국민대신문>이나 <북악방송> 또한 처음에는 학교 당국의 부속기관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던 학생자치언론으로 출발했던 거니까. 보수적으로 잡아도 1995년 창간된 <서울대저널>이나, 1996년 창간된 <연세통>의 후신으로 출범한 <연세두리>와 같은 언론들이 학교나 학생회로부터 독립된 언론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처럼 아예 학생자치언론들이 연합회를 만들어 공동으로 기금을 걷어 배분하는 곳도 있고.
그럼에도 새삼 다시 새로울 게 없는 학생자치언론 이야기가 나오는 건, 대학 사회의 풍경이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점이랑 그럼에도 계속 저항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광경이 섹시하다는 점 때문이겠지. 생존경쟁만이 시대의 명제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어쨌거나 쉽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길을 나선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어쩐지 반짝반짝한 것이 희망의 증거처럼 보일 테니까. (그 반짝반짝이 사실 가까이에서 보면 스스로를 불태우는 인간발화에 가깝다는 것까진... 관심들이 있으시려나?) 아무튼, 갑자기 새삼 학생자치언론이 쿨하고 새로 나온 트렌드인 것처럼 취급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동료들에게 이야기해줬던 게 생각이 났다. 같은 문제에 대해, 두 차례 다른 답을 해줬던 것 같다.
나야 어차피 구원투수처럼 올라와서 한 학년도만 공을 던지다 내려가면 되는 사람이었으니 그런 고민이 적었지만, <국민저널>의 편집국장/위원장 직을 맡았던 사람들 중 폐간이나 정간을 생각해본 적 없는 편집장은 아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리 해도 장기적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구조니까. 답은 없는데 문제는 얼마나 많은가. 안정적인 자본 수급의 문제 / 안정적인 자본 수급이 안 되니 기자들을 다그치거나 붙잡아 둘 방법이 '열정'과 '학생사회에 대한 애정'을 자극하는 거 말곤 없다는 열정페이의 문제 / 그렇게 붙잡아도 대학이란 공간의 특성 상 길어야 3년 일하다가 나가는 게 한계라서 노하우가 쌓인 기자들은 조직을 나가야 한다는 인력 수급의 문제 / 온오프라인 모두에 전력을 해도 인지도를 높이기 어렵다는 독자의 무관심 문제 / 제도권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조건 혐오하기 시작하는 '꿘' 혐오 정서 / 자신의 정파가 추구하는 방향성대로 기사를 내주기를 요구하고는, 그러지 않으면 어용이니 타협이니 몰아가는 몇몇 운동권 정파들의 정파 이기주의 / 학교 본부 측의 조직적인 취재 거부와 사보타쥬....
이 모든 게 뭉쳐서 단 하나의 문제지점으로 수렴되는데,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자주 바뀌는 인력, 100% 승계되기 어려운 노하우, 영업까지 같이 뛰느라 취재와 편집에만 전념하기엔 좁아지기 일쑤인 시야... 방학 중엔 독자수가 급감하는 탓에 기획기사의 호흡을 길게 잡고 가기 어려운 현실도 무시하긴 어렵고. 덕분에 <국민저널>이라는 이름을 어깨에 떠맨 다른 편집국장/위원장들은 죄다 "박수 칠 때 떠나야 하나"라는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언론의 목적은 결국 좋은 기사를 쓰는 것에 있는데, 좋은 기사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쓰나마나한 기사를 생산하는데 그친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생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었겠지. 게다가 학보사/학내방송사/영자신문사 등 기존에 존재하던 매체가 아닌 다른 언론이라면, 분명 그 언론 만의 독자적인 기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존 3사의 논조를 반복한다면 단지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면피를 할 수는 없는 노릇. 복수의 언론매체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증거하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해야 한다. 학생자치언론의 '좋은 기사'란 그러니까 기존 매체들의 한계지점에서 한 발 더 내딛는 기사여야 한다는 제약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첫 번째로 "좋은 기사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꾸역꾸역 지면을 내느니 차라리 문을 닫아버릴까도 고민 중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불 같이 화를 냈다. 대충 이런 요지였던 것 같다.
교지조차 없는 마당에, 기존 언론 3사(학보사/학내방송사/영자신문사) 환경에서 근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 명확한 한계를 발견하고 나와서 차린 매체잖아요. 해당 매체들이 그 한계를 극복해낸 것도 아니고, 그러기에 <국민저널>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그 의의가 있는 매체죠. 올해 우리가 한 보도 중 학보사에서는 나올 수 없는 종류의 보도들이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었어요. 그 기사의 완성도에 대해 매체의 책임편집자로서 만족하지 못하는 건 알겠지만, 그런 정보가 투명하게 유통될 수 있는 창구가 하나라도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차이 아닙니까. 그리고 창간 과정을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창간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학점과 건강과 애정전선과 행복을 희생해가면서 창간을 했나요? 이 지점까지 끌고 온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만약 우리가 여기에서 문을 닫는다면, 나중에 누군가 학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하더라도 <국민저널>이 없으니 다시 처음부터 창간을 해야 할 겁니다....
두 번째로 "그래도 매체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땐 전혀 반대 지점의 이야기였다.
물론 당연히 매체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죠. 언로야 많을 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요? 하지만 이제 독립 매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시절은 지난 것 같아요. 막말로 '학생자치언론이다!' 라는 이유만으로 받을 수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여기까지였던 것 같고요. 결국은 '왜 독립해서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기사로 답할 수 있는 매체여야 할 거에요. 학교 본부로부터, 학생회로부터, 특정 정파로부터 자유로운 언론. 그 어느 곳에도 눈치보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쓴소리를 던질 수 있는 언론이어야 할 것이고, 그런 성격은 오로지 기사로만 증명할 수 있지요. 좋은 기사를 써야, 없는 것보다 나은 매체일 수 있는 거겠죠...."
결국 둘 다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좋은 매체는 결국 좋은 기사로만 만들어지지만, 그 좋은 기사를 내려면 기댈 만한 매체가 있어야 한다. 창업도 수성도 모두 어려운 일이니, 어느 쪽에 더 그 의의가 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나는 언젠가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날도 올 테니 당장의 부진이나 슬럼프에 좌절하지 말고 묵진하라는 조언을 더 많이 했지만, 그래도 '학생자치언론이다!'라는 점만을 핑계로 더 좋은 기사에 대한 고민을 덜 하는 게 면피의 대상이 될 수 없단 점엔 동의한다. 그래서 난 상대가 어느 한 쪽으로 기운 고민을 가지고 찾아왔을 땐 그 반대 쪽 무게추에 힘을 실어줬다. 매체가 존속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존속한 매체가 좋은 기사를 쓰는 좋은 매체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국민저널> 일에는 외주로 표지 디자인 도와주는 것을 제외한 모든 실무에서 손을 뗐지만, 이젠 구성원도 아닌 주제에 괜히 자부심을 가져본다. 올해 <국민저널>엔 <국민저널>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기사가 있었노라고. 김혜미 전 편집국장이 사력을 다해 일을 했고, 스스로의 한계와 마주친 기자들은 자주 울었으며, 그 와중에 전직 편집국장이었던 유지영 기자는 졸업을 앞두고 단톡방 언어성폭력 사건 연속 기사로 어지간한 기성언론들보다 더 성숙하고 치밀한 기획을 보여 주었다. 이 두 편집국장들이 가장 자주 '폐간'을 고민했던 사람들이고, 아무 대가도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매체에 들어온 후배들 때문에 끝내 자기 대에서 폐간을 하지 못 했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기왕 그렇게 된 바에야 폐간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을 매체를 만들어야겠다고 가장 이 악물고 일을 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학생자치언론/대학독립언론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 치열하게 고민 중일 것이다. 대학 본부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위해 노력 중인 기존 학보사 기자들 또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겠지만, 매체의 존속을 자기 손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학생자치언론에서 일하는 이들이라면 오늘도 머릿 속에 '폐간?'이라는 더 극단적인 단어가 스쳐 지나가는 걸 피할 순 없겠지. 그들의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가는 '폐간'이라는 단어가, 결국 폐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기사를 써서 더 좋은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답으로 수렴되길 바란다. 당신들의 건투를 빈다.
2013년도 KBS 프로그램에 보도된 국민저널. 이 때에도 '대학언론의 위기' 라는 말이 나왔다. 2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같은 이야기만 유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