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녹화. <잉여싸롱>만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기로 했다. 평상시 웃고 떠드는 느낌의 쇼였기 때문에 과연 우리의 언어로 추모와 연대의 뜻을 담아낼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작년에는 그 이유로 방송을 결방했었다.) 이런 걱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한겨레TV 채널 상부에선 모든 프로그램이 세월호 참사 1주기 특집을 마련하자는 안을 내놓고도 "<잉여싸롱>은 여차하면 한 주 쉬어가야 하나" 하는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대중문화가 사람들을 위로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쉬운 위로와 이른 치유인지 잘 모르겠더라. 아직 현재진행형인 사건 아닌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고, 밝혀지지 못한 진실이 있으니. 대통령의 말처럼 이 사건을 '안전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으려면, 일단 이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실종된 사람들을 찾으려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하지 않겠나. 그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일테니.
그래서 우린 봉준호의 세계를 재견하기로 했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사회라는 공동체가 그 사건을 어떤 식으로 소비하느냐를 꾸준히 탐구해 온 감독이니까. 위로나 치유 이전에, 우리의 부족함을 먼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하니까. 새삼스레 돌아본 봉준호의 세계는 세필로 그려낸 지옥도였다. 녹화 내내 입안에 침이 말랐다.
우리의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싶어 녹화에 들어가기 전 노란리본을 만들어 가슴에 달았다. 다른 두 MC분들께도 하나씩 만들어드렸다. 정작 나는 그간 달아본 적 없는 리본이었다. '리본을 달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가슴 아파하고 있고 그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굳이 리본을 달아 내가 추모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과시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시스템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먹고 산다는 이유로 크고 작은 부조리들을 체념하고 눈 감았으면서, 그런 주제에 쉽게 피해자의 자리에 서서 가해자에게 손가락질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정작 한 번 달고 나니 녹화가 끝난 다음에도 도저히 떼어낼 수 없더라.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아직 건져 올리지 못한 배가 있는데, 안 달았으면 모를까 한 번 단 리본을 어찌 떼겠는가. 그것도 '당신의 귀환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은 리본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 1년 내내 프로필 사진에 리본을 달고 있던 사람들 또한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결국 난 그 리본을 가슴에 달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집주인과 이야기하며 한 주를 보내는 중이다.
1년이다. 실종자의 귀환을 기다리며 로고를 흑백으로 바꾼 <국민저널>은 여전히 흑백 로고를 유지 중이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특별법 시행령을 놓고 투쟁 중이며, 실종자 가족들은 하루 빨리 유가족이라도 되고 싶다며 울부짖고 있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팽목항 방문 뒤 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고, 총리는 식물상태며 부총리 또한 자리를 비웠다. 여전히, 우리에겐 선장이 없다. 1년 전 그 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