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똑바로 씁시다. 하인이 뭡니까, 하인이." 시청자의 항의가 있었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를 다룬 한겨레TV <잉여싸롱>에서, 내가 극중 한정호(유준상)와 최연희(유호정)의 집에 상주하며 집안일을 봐주는 집사, 비서, 상주 도우미 등을 계속 '하인'이라고 불렀던 것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신분제가 폐지된 시대에 해당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하인'이라 부르는 건 모독일 수 있으니까. 제작진은 빠른 속도로 사과의 댓글을 달았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문제제기에 빠르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분들이니까. 나 또한 집사나 비서, 상주 도우미들을 제대로 된 직함으로 불러야 한다는 점에는 시청자의 항의에 동의한다.
그러나 제작진의 빠르고 진심 어린 사과와는 별개로, 나는 내가 <풍문으로 들었소>를 설명하며 '하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극중에 나오는 이들은 '윗전'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비윤리적인 일이라도 하고야 만다. 한인상(이준)과 서봄(고아성), 그리고 그 아이를 분리•격리하는가 하면, 서봄의 부모를 찾아가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하며 결혼을 무마하려는 따위의 일들. 물론 그들은 뒤에서 고용주에 대한 험담을 나누기도 하고 인상과 봄이 몰래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그 정도의 소소한 저항이야 예전 양반댁 머슴들도 하던 것 아닌가.
선친이 살던 고택 한옥을 고스란히 분해해 양옥 실내로 옮겨놓은 이 기괴한 구조의 거대 저택 안에서, 정호는 대청마루(였던 공간)에 서서 계단 아래(과거 마당이었을 공간)에 도열한 집사, 도우미들을 향해 지시를 내린다. 반인륜적인 지시에 항의할라치면 윗전들은 즉시 물리적•위치적 상하관계와 계약관계를 상기시키며 찍어누른다. 시키면 너희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오는 대한민국 1% 정호•연희 부부와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이런 관계에 묶여있는 이들을 하인이라 부르지 않고 집사, 도우미라고 부르는 순간, <풍문으로 들었소>가 의도적으로 담아낸 전근대적인 관계는 깔끔하고 class-blind 한 용어 뒤에 은폐된다. 그리고 마치 그런 일들이 집사나 비서, 상주 도우미들의 일상적인 노동인 것처럼 오도된다. 그 직종(들)은 그런 종류의 부당한 노동까지 포괄해서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직종이 아닌데도 말이다. 난 그것이야말로 해당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PC. Politically Correct)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만 해도 '장애자/장애우 & 정상인'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발끈해서는 '장애인 & 비장애인'이란 단어로 수정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실존하는 차별의 양상이나 억압을 표현하는 단어조차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사용하지 말자'고 해버리면,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만 사라질 뿐 차별과 억압은 고스란히 남는다. 내가 하인이란 단어로 <풍문으로 들었소>의 몇몇 인물들을 설명한 것에 대해, 불쾌했다면 유감이지만 나는 사과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