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증을 동반한 환상지 증후군 Phantom limb syndrome with pain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G54.6
질병DB 29431
병의 주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신체 절단 시 말초 감각신경이 함께 사라지는 과정에서 통증을 억제하는 중추신경 기능이 상실됐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근육이완법, 국소 감각신경 차단법, 신경근 차단법, 항통증제 약물 복용 등의 치료를 시행하지만, 경우에 따라 정신과적인 치료도 병행한다. 사라진 신체부위에 대한 애착이나 정서 장애 등 정신적인 요소 또한 병의 원인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신체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해 고통을 겪는 환자에겐 정신과적 치료법인 ‘거울 치료(Mirror Therapy)’를 시행하기도 한다. 과정은 이렇다. 환자로 하여금 한쪽 면에 거울이 달린 상자 안에 잘린 팔이나 다리를 넣게 한다. 절단하지 않은 반대쪽 팔 혹은 다리가 상자 벽에 달린 거울에 비춰진 탓에, 환자는 마치 상자 속에 들어가 있는 절단면에서부터 자신이 상실한 부위가 다시 생겨난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경험한다. 그러나 상자에서 팔이나 다리를 빼는 순간 환자는 그 부위가 잘려나갔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보통 사고나 수술 당시 자신의 신체부위가 잘려나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는 환자는 없다. 충격으로 정신을 잃거나, 혹은 전신마취를 통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절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거울 치료는 이렇게 환자가 직접 보지 못한 '절단'과 '상실'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재현해 인지시켜 줌으로써, 절단 당시 자극으로 활성화된 뇌가 절단의 순간 혹은 고통의 순간에 고정되어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 이제 더 이상 그 부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통 또한 허상임을 확인시켜준다.
베데스다 미 군의관 의과대학 잭 차오 박사가 워싱턴 월터 리드 미 육군 병원에서 니콜라스 파포어 육군 병장에게 거울 치료를 시행 중이다. (사진 출처: 미 국방성 홈페이지 http://www.defense.gov/news/newsarticle.aspx?id=48682 )
2.
이별 후 고통을 겪고 있는 친구 하나가 내게 말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서 안고 싶지. 술 먹으면 전화하고 싶어지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이제 없는 거야.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그 순간에 머물러 있지만 사람은 계속 변하잖아.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진 이후 점점 변해갔겠지. 앞으로든 뒤로든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갔을테니까. 그래서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그저 내 머릿 속에만, 내 기억 속에만 있는 거야. 지금 다시 달려가도 잡을 수 없겠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환상지 증후군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별 후 우리의 가슴과 머리가 치는 장난 또한 환상지 증후군과 다르지 않겠구나 싶었다.
헤어진 순간 그 관계는 끝난 거고 우리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과 머리는 이별의 순간에 고정되어 여전히 돌아가면 예전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거라 믿고 싶어지니까 말이다. 헤어진 것 자체에서 오는 충격이나 분노, 고통은 비교적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내가 돌아가면, 아니면 상대가 돌아오면 다시 예전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러지 못하고 있느냐는 고통은 오래 남아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말하자면 이미 끝난 관계, 이미 사라진 상대로부터 오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다. 멀쩡히 책을 읽다가, 일을 하다가, 길을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간헐적인 발작. 당연히 스트레스나 날씨 변화에 따라 증세가 오락가락하는 것도 비슷하다.
생각해보면 치료법도 거울 치료와 비슷하다. 두 사람이 행복하던 시절 같이 찍었던 사진, 주고 받았던 손편지, 내 방에 남아 있는 선물들, 상대가 남긴 흔적들을 모아서 이미 사라진 관계를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불태우든 찢어버리든 하는 과정을 통해 이 관계가 파괴되었음을, 이제 돌아갈 곳이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거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끝난 줄 알았던 관계를 굳이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다음 그것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는 건 애써 담담한 척 했던 마음을 부숴버리는 일이테니까.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의 머리와 마음은 이별을 납득한다. 물론 거울 치료가 환상지 증후군을 한 번에 치유해주지 못하듯, 이런 일들도 이별의 고통을 금방 경감시켜 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3.
여기는 이우진의 펜트하우스 안입니다. 적막한 방이네요. 창가로 걸어가는 당신의 발소리가 실내를 울립니다.
이제 내가 종을 울리는 순간, 당신은 두 사람으로 나뉩니다.
비밀을 모르는 당신의 이름은 오대수. 비밀을 아는 당신은 몬스터에요.
종이 또 한 번 울리면, 몬스터가 뒤돌아 걷기 시작합니다. 한 걸음에 1년씩 늙어 가는 거에요.
결국 몬스터는 일흔 살에 죽게 됩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매우 편안한 죽음이니까요.
행운을 빕니다.
참고문헌
“잘려나간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헬스코리아. 이유리 기자. 2014.04.01
http://m.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131513
"헛발다리" 한국어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D%97%9B%ED%8C%94%EB%8B%A4%EB%A6%AC
<올드보이> (2003, 박찬욱)
각본: 황조윤, 임준형, 박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