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했다가 은평경찰서로 연행되어 간 후배 K를 만나러 가던 길,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는 내게 물었다.
"그래도 학생들이 좀 참고 기다려보는 건 어때요? 청와대로 행진을 하는 거는...."
내가 되물었다.
"청와대 앞은 법적으로 사람이 걸으면 안 되는 곳인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여러 명이 가면 아무래도..."
손에 든 게 종이 한 장과 국화 한 송이뿐인 사람들이 떼로 몰려간들 뭘 어쩔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한숨을 쉬었고 택시기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택시에서 내릴 때쯤,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시작되었다. 진심 어린 사과인 듯 했던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다가 은평경찰서 앞에서 내릴 무렵, 대통령은 뜬금없이 '해경은 이번 사태에 무능했고 구난 업무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는 대신 자리보전과 실적에만 매달렸다. 그러니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함께 택시를 탔던 후배 Y와 H, 그리고 나는 택시에서 내리지 못하고 2초 간 얼음이 되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해법이란 말인가.
대통령은 '안전행정부' 소속 독립청 '해양경찰청'을 해체해, 구난 업무는 명예직에 가까운 총리실 산하의 부처 '국가안전처'에, 수사 업무는 육지의 경찰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아직 해경이 시신을 수색해야 하는 시점, 그리고 아직 해경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도 들어가지 못한 시점이었다. 팽목항에서는 패닉에 빠진 해경들 때문에 그들에게 기대야 하는 아직 남은 실종자 가족들도 덩달아 패닉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최종 책임자라며 사과를 했지만, 그가 담화에서 제시한 해법에서 자신이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벌써부터 인터넷에서는 대통령이 진심 어린 사과와 강도 높은 국가개혁의 의지를 보여주었으니 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이에 질세라 과연 선거의 여왕이네, 지방선거 게임 끝났네 하는 비아냥도 함께 터져나왔다. 나 또한 그 비아냥의 행렬에 동참하긴 했지만, 그 키득거림으로도 솟구쳐 오르는 억울함과 분노를 누를 수는 없었다.
어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화 한 송이와 '가만히 있으라'고 인쇄된 A4지 한 장씩만 들고 있었다. 침묵행진의 특성 상 확성기로 구호를 외친다거나 하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그들은 그저 침묵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했고, 그들이 판단하기에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된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고자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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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불과 몇 시간 뒤 대통령이 스스로 "이 모든 사태의 최종 책임은 국정최고책임자인 저에게 있"다고 말한, 그 책임을 물으러 간 것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슬프고 비참하다고, 그런데 국정 최고책임자인 당신은 그 책임을 통감하시냐고. 만약에 통감하신다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그걸 물으러, 그저 꽃 한 송이와 종이 한 장을 들고 그 밤의 거리를 조용히 걷기만 한 사람들을, 경찰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검거해갔다.
K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 함께 면회를 갔던 후배 Y는 버스 안에서 결국 눈물을 흘렸다. "선배님, 너무 억울해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그걸 추모하겠다고 했을 뿐인데..." Y는 K 말고도 잡혀간 친구만 4명이 더 있었다. 나는 집에 가면 되는 일정이었지만, Y는 또 다른 경찰서로 친구를 만나러 가야 했다. 사람을 위로하는데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Y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뭐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Y의 어깨를 토닥거려주고, 진정될 때를 기다렸다가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 Y를 웃게 만든 게 전부였다. 그 억울함에 대한 대답은 나조차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뭐라 대답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을 크기의 억울함이었으니까.
나 또한 멀고 가까운 지인들이 적잖이 경찰에 끌려갔다. 누군가는 만민공동회에 참여했다가 구로서에 끌려갔고, 누군가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 양산분회장 시신 탈취 저지 행동에 갔다가 수서서로 끌려갔단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 때문에라도 5월 18일 전후로는 웬만한 집회는 강경진압하지 않던 경찰에게, 어제는 그저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 하루 전일 뿐이었던 모양이다. 그 많은 이들에게 다 찾아가 보았어야 했겠지만, 하루 3회로 제한된 면회 회차를 나 하나로 낭비하자니 그들을 꼭 봐야 하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도 많을 터라 가지 않았다. 다들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중책들을 맡은 이들이니 말이다.
잡혀간 후배 K는 내일이 되어야 나올 것 같단다. 이미 조사는 일찌감치 끝났고 조서 작성도 끝났다고 하는데 말이다. 오늘 밤에만 몇 차례나 전화해 언제 풀어줄 셈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은평경찰서 지능계 형사는 번번이 난색을 표하며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서울경찰청과 검찰이 협의를 해야 우리에게 지시를 내려주는데, 우리도 밤 10시 쯤엔 풀어줄 수 있을 줄 알고 있다가 지시가 없어서 내내 기다렸다. 내일 몇 시쯤 풀어줄 수 있을지도 내일이 되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수화기 너머로 높은 양반들 대신 항의를 받아야 하는 말단들의 고뇌가 느껴졌다. 나는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이 되어 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으면, 밤 사이 잡아간 - 그 책임을 물으러 간 - 사람들을 풀어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풀려난 사람들은 변호사거나, 기자거나,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아닌 이들은 '일반 시민'의 통행에 방해를 준다는 이유로, 집시법 위반으로 아직도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 켠에서는 오늘 오전에 있었던 청년좌파의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기습 점거 시위를 예로 들며 '섣불리 내보내줬다간 재범의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48시간을 채워서 내보내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잠시 국가가 '아직 저지르지 않은 범죄'의 가능성 만으로 사람을 구금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조문을 뒤져보았지만,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가 요령부득이었다.
집에 돌아와 하루 일정을 마친 깊은 밤, 벌써부터 이번 대국민담화가 지방선거의 판세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다. 글쎄, 솔직히 모르겠다. 구체적인 정책 요구는 하지 않은 채 '진심 어린 사과' 요구만 하며 이번 선거의 포커스를 '세월호 참사 심판'으로 잡았던, 게으르기 짝이 없는 제1야당이 선거에서 참패를 하거나 말거나. 그건 일단 지금 부당하게 잡혀간 내 동료들이 돌아온 다음에나 생각해 볼 참이다. 이렇게 내내 억울한 채로, 무력하게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