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덴마크 우유장인 김현복을 찾아서 http://www.ize.co.kr/articleView.html?no=201405111850728633
아이즈의 선배들이 진지한 글만큼이나 깨알같이 웃긴 글을 잘 쓴다는 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니, 위근우 선배의 명문에 대해 내가 말을 보태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아침부터 낄낄 웃다가 글 속에서 '황금혀'로 묘사된 K 선배와의 추억 한 자락이 떠올라 적어본다.
내가 아직 텐아시아를 퇴사하기 전의 일이다. 그 날 K 선배는 오후에 노홍철과의 인터뷰 스케줄이 있었고, 나는 오후에 모처에서 열리는 제작발표회 스케줄이 있었다. 집에 있으나 회사에 있으나 일하는 건 매한가지인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자랑하던 회사는,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밤새 마감을 마치고 잠시 엎어져 자던 나는 아침 10시 쯤 느즈막히 일어나 밀린 잠을 보충한답시고 택시를 타고 출근길에 오른 참이었다. 갑자기 K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 선배"
"승한씨 지금 어디에요?"
K 선배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나는 순간 혹시 내가 늦게 가는 게 뭔가 문제가 되는 상황인가 싶어 바짝 긴장을 했다.
"네, 저 지금 택시 타고 양화대교 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당산역 사거리였다.)
"아, 잘 됐네요. 승한씨 미안한데 혹시 홍대 잠깐 들를 수 있겠어요?"
"홍대는 갑자기 무슨 일로요?"
"아, 내가 챙겼어야 하는데, 내가 나오면서 경황이 없어서 못 챙겨서 그런데요..."
K 선배의 말인즉슨, 단 것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노홍철과의 인터뷰니만큼 사진 컨셉을 '초콜릿 더미에 빠진 노홍철'로 잡고 갈 예정이며, 실제로 인터뷰 때 노홍철에게 달다구리를 선물로 줄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K 선배는 영수증 처리를 해줄 터이니 이러저러한 달다구리를 좀 사 가지고 올 것을 부탁했다. 어차피 제작발표회까지 얼마간 시간이 남았던 나는 K 선배의 부탁을 흔쾌히 수긍했고, 안도의 한숨을 쉰 K 선배는 전화기 너머로 '맛집을 찾아 소환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승한씨, 초콜릿은 OOOO랑 OOO에서 사오면 될 것 같고요. 마카롱은 OOO, 카라멜은 OOOO, 케이크는 OOO나 OOOOO에서 사면 됩니다. 혹시 OOOO 어디인지 알아요? 대충 OOOO 근처인데..."
나도 어지간히 홍대 죽돌이라 홍대에서 달다구리를 파는 집은 빠삭하게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K 선배는 전화기 너머로 내가 자주 가는 집과 들어보기만 한 집, 듣도보도 못한 집까지 엄청난 속도로 불러주었다. 마치 오너셰프로부터 비밀 레시피를 전수받는 주방 막내가 된 심정으로, 나는 열심히 선배가 알려준 맛집을 받아적었다.
나는 드럭스토어에서 간단하고 무난한 수입산 공산품 초콜릿들을 사고, 선배가 알려준 홍대 곳곳의 달다구리 맛집을 찾아다니며 달다구리를 긁어모았다. 나중에 영수증 처리를 해보니 토탈 8만원인가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들은 아래와 같다.
(원래 더 많았지만, 홈페이지가 바뀌면서 과거 사진들을 찾기가 참 어려워졌다. 노홍철이 초콜릿 더미에서 진정한 행복의 표정을 짓는 사진이 있었는데 말이다. 경영진의 장난질에 분개한 텐아시아 기자들이 집단 사직을 하고 새로 구해 온 사람들로 회사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홈페이지 또한 개판이 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색이 텐아시아인데 워드프레스 기반이 뭔가 워드프레스 기반이.)
실제로 인터뷰가 끝난 뒤 노홍철은 내가 사온 그 수많은 달다구리를 악착같이 싸갔다고 한다. 나중에 K 선배가 알려준 맛집들을 천천히 다시 방문해 맛을 본 결과 과연 홍대에서도 손꼽히는 집들이었고, 나는 새삼 미식가 K 선배의 혜안에 감탄하게 되었다. (다만 세월이 지나 그 중 대다수는 홍대의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이사를 갔다.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지금까지 아침에 간단히 적어본, 단 것을 좋아하는 '황금혀' K 선배에 대한 추억이었다. (사실 K 선배는 본인이 하지 않는 술, 담배, 닭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종류의 맛집을 꿰고 있는 사람이다. 선배와 더 맛있는 식사를 했던 행복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건 그냥 나만 간직하고 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