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신건강의학과 로비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보면 다른 환자들을 힐끔힐끔 보게 된다. 병원을 찾은 이들은 대부분 온순하고 조용하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씩 자기 자신의 힘듦을 견디지 못해 주변에 공격적인 형태로 발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도 그렇다. 자신도 동의한 치료 프로세스를 놓고, 그게 잘 맞지 않자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애꿎은 프론트데스크 직원에게 화를 내는 사람을 봤다. 입장을 바꿔보라고, 내가 잠이나 제대로 잤겠느냐고 따져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분노가 덕지덕지 앉아있었다.
그의 푸념을 들으며 그를 힐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후 나라고 뭐가 크게 다를까 하는 의문이 뒤를 이었다. 나도 저 이가 어떤 사정이 있어서 저 지경이 되었는지 딱히 안 궁금해 하고 있지 않나. 그냥 빠르게 보기 흉한 사람이라고 잘라 생각하고 있지 않나. 나는 문득 내가 화를 낼 때에도 저렇게 보기 싫은지 궁금해졌다. 내가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분노와, 사정을 모르지만 보기 흉하다고 생각한 그의 분노가 뭐 얼마나 다를까 궁금해졌다.
2. “승한씨는 관계 안에서 안정을 찾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말씀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늘 오롯한 혼자이기를 바랐으나 사실은 그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 나다. 어쩌고 싶은 건지 나조차도 모를 모순.
그래도 작년보단 모든 게 나아졌다. 봄의 무기력도, 초여름의 공격성도 어느 정도 통제범위 안에 들어왔다. 치료와 상담을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오후.
3. 프리랜서로 늘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내가 쉰답시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간 내 자리가 사라질 거야. 다른 글쟁이가 그 자리를 채울 거고, 난 금세 잊혀지겠지. 다행스럽게도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날 기다려준 이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작년엔 김혜리 기자님께서 팟캐스트 아이템이 턱 하고 막혔을 때 ‘방학을 가지고 오라’고 선선히 날 기다려주셨고, 올해는 MBC 탐나는TV 팀과 한겨레가 날 기다려주었다. 쉬고 돌아와도 날 기다려줄 사람들이 있다. 날 쉽게 버리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난 더 단단해진 기분이다.
20230530: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 2023. 5. 30. 14:30
- 글 뭉치/잡상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