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몇몇 평론가들은 쿠글러가 사건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스카를 필요 이상으로 착한 사람인 것으로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맞다. 오스카가 차에 치인 개를 돕는 장면이나 대마초를 바다에 버리는 장면은 쿠글러의 창작이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스카가 살아있었다면 “당신 정말로 새로 거듭날 작정이었나요?”라고 물어서 확인해 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걸 확인해 줄 오스카는 이제 없다. 경찰이 총으로 쐈으니까. 맞다. 영화는 오스카가 감옥에 갔었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는 불법 총기 소지 혐의로 감옥에 다녀왔다. 그 이전에는 경찰에 불응하고 도주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래,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날, 프루트베일 역에서 오스카는 비무장 상태였고, 도주를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오스카는 이제 없다. 경찰이 비무장 상태의 오스카를 총으로 쐈으니까. 오스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지, 더 나쁜 사람이 되었을지, 그 가능성의 방향을 확인할 방법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 글이 공개될 2023년 5월 25일은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8분 46초간 목이 짓눌려 사망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도 그래서였다. 2009년 오스카 그랜트의 사례가 있었는데도 어떻게 또 조지 플로이드 같은 사례가 있을 수 있었나. 놀랄 필요 없다. 달력을 펼쳐 놓고 ‘비무장 상태의 흑인이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해 사망한 날’을 체크하기 시작하면, 우린 아마 365일에 전부 동그라미를 칠 수 있을 테니까. 1938년 3월 25일 자신이 일하던 호텔에서 끌려 나와 세 명의 경찰에게 맞아 죽은 베리 로손(Berry Lawson)부터, 2023년 2월 22일 선글라스를 훔쳤다는 혐의로 경찰에 쫓기다가 총에 맞아 죽은 티머시 맥크리 존슨(Timothy McCree Johnson)까지, 그 목록은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이 글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해 사망한 비무장 상태의 흑인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으로 채울까 고민했었다. 자료를 찾아보던 나는 금세 방향을 접었다. 이름과 날짜만 다 적어도 내게 허락된 지면의 두 배를 가볍게 넘기기 때문이다.)
(후략)
씨네플레이 | 우린 같은 걸 본 걸까 |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한 우주가 사라지던 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가능성으로 가득했던 한 우주가 사라지던 밤
익숙한 절망과 조심스러운 희망이 교차하는 날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엄마 완다(옥타비아 스펜서)의 ...
blog.naver.com
- - - -
쓰고 나서 무언가가 오래 남았던 글. 더 잘 썼어야 했던 거 아닌가 하는 부채의식과, 그래도 뜻한 바대로 담아냈다는 뿌듯함이 교차했던 원고. 후자의 기분이 든 건 오랜만이라 이렇게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