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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채널A 메인뉴스 ‘뉴스A’는 제보자 A씨의 추가 폭로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6월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결제한 초밥을 김씨 자택으로 배달했다. 이와 관련 배씨와 A씨는 김씨에게 배달한 초밥 10인분을 누가 먹었을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 최측근 배씨는 “나는 개인적으로 기생충이 있다고 생각해. (자택) 밑에 사는 기생충이 있든지. 뭐가 있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 후보 부부와 두 아들이 먹고도 남을 초밥이 법인카드로 결제되고 배달까지 이뤄졌는데, 이를 지시·이행한 공무원들 스스로 의문을 가질 만큼 비상식적이었다는 의미다. 채널A는 “두 사람 대화가 법인카드로 산 음식을 누가 소비했는지 밝히는 데 핵심 정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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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리스크’ 李 “내 불찰” 沈 “아내 비서실 만든 것”
미디어오늘 | 김도연 기자 | 2022.02.12 11:27
내 주변에는 영화 <기생충>을 보고 불편함을 호소한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가 박사장(이선균)네 지하에 숨어사는 오근세(박명훈)를 말 그대로 기생충으로, 혐오감이 드는 족속으로 묘사함으로써 - 원래 영화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 계급에 대한 편견과 빈곤혐오를 조장했다는 것이 불편함의 요체였다.
실로 오근세의 묘사는 징그러웠다. 오근세는 아내 문광(이정은)이 물려주는 젖병을 쪽쪽 빨고, 계단을 네 발로 기어 올라가며, 손이 묶여있자 머리로 버튼을 쿵쿵 찍어가며 모르스 부호로 아무도 못 알아듣는 감사 인사를 올리는 기인이다. 김기택(송강호)과 그의 가족들은 오근세를 보면서 경멸 이상의 거부감을 숨기지 못한다.
특히나 연교(조여정)의 입을 통해 설명되는 '다송이(정현준)가 1학년 때 겪었던 일' 시퀀스에서, 지하실 계단을 올라오는 오근세는 정말로 괴물처럼 보인다. 번들거리는 머리, 희번뜩이는 안광, 소름끼치게 천천히 올라오는 움직임까지. 다송이가 귀신을 봤다고 믿어도 할 말이 없는 묘사였다.
나는 그 의견에 절반쯤 동의했고 절반쯤은 동의하지 않았다. 절반쯤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영화가 오근세를 묘사하는 시점이 대부분 김기택네 식구들의 관점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근세와 국문광은 김기택의 가족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양쪽 모두 생의 어느 시점 쯤에 대만식 단수이 카스테라 집을 열었고, 예정된 수순처럼 '불량식품'이라는 오명을 쓰고 장사를 접고 난 뒤 빚을 크게 졌다. 김기택네 식구들은 다행히 그 실패를 버티고도 빚쟁이들이 찾아오지는 않을 만큼 수습할 수 있었지만, 오근세네 식구는 사정이 달랐다. 빚을 막느라 사채를 쓰고, 그 사채는 더 큰 빚이 되어 오근세를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누가 운이 조금 더 좋았느냐 아니냐가 김기택의 가족과 오근세의 가족의 차이를 낳았다.
국문광을 밀어내고 마지막 구성원 박충숙(장혜진)까지 박사장네 집에 전원 취업에 성공하며, 김기택네는 계급 상승을 꿈꾼다. 그러나 햇볕 한 줌 안 드는 숨겨진 지하에, 김기택처럼 대만식 카스테라 가게를 열었다가 망했던 오근세와, 한때 지금 박충숙이 차지하고 있는 박사장네 입주 가정부로 살았던 국문광이 있다. 말하자면 오근세와 국문광은 "김기택네가 한 발만 잘못 딛으면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악몽"이다.
그래서 오근세의 묘사는 더 혐오스러워야 했다. 계급상승을 꿈꾸는 순간 마주친, 지나치게 가까운 동족이기 때문이다. '젖병물리기'는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자리에서 제대로 일어날 힘도 없는 오근세에게 급하게 뭐라도 먹이긴 해야 하고, 그렇다고 갑자기 단단한 음식을 먹일 수는 없어서 유동식을 먹여야 하는 문광이 생각해 낸 방책이다. 하지만 그런 맥락을 설명듣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은 충숙의 눈에 오근세는 그저 괴인으로 보여야 한다. 자칫 내가 저 지경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그를 혐오해야 할 무언가로 포장해야 하니까.
오근세의 말투나 눈빛, 행동이 이상한 건, 수 년 동안 아내인 문광 말고는 그 누구와도 이렇다 할 교류를 한 적도 없이 지하에만 갇혀 있어서 사회생활을 거진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기택네 가족의 눈에 오근세는 "우리도 힘들지만 저 지경이 되지는 않았다"라고 선을 그어 혐오할 만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네 발로 간신히 계단을 기어 올라가는 상황도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보여야 한다. 맥락을 이해하기 싫으니까. 이해했다가는, 자칫 기껏 계급상승의 문턱까지 올라온 자기들까지 딸려 굴러떨어질까 두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의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근세' 시퀀스. 이 장면은 특별히 더 비극적이다. 박사장네 가족 중 근세가 찍어 올리는 모르스 부호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컵 스카우트인 다송이다. 다송이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제대로 마음을 열고 가장 많은 시간을 교류하는 것은 근세의 아내인 문광이다. 어쩌면 다송과 근세가 다른 방식으로 만났다면, 둘은 서로를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전하고 윤택한 환경에서 자란 어린아이인 다송에게, 혹시라도 누가 있을까 두려운 마음에 두 눈을 부릅뜨고 조심스레 지하실에서 올라오는 근세는 그저 귀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끔찍한 오해. 다송에게는 도와달라는 근세의 모르스 부호 메시지를 해독할 능력이 있지만, 같은 지붕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근세의 절박한 피울음을 그저 귀신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절박한 호소를 - 해석해 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저 '불결한 것', '나와는 달라서 이해할 수 없는 것', '별로 알고 싶지 않은 것'으로 잘라내고 멀리 하는 계급분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이다.

근세와 문광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근세는 조금 다른 사람이다. 여전히 박사장네 지하에 숨어 사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박사장네 식구들이 집을 비웠을 때 근세는 햇살이 쏟아지는 통창 앞에 앉아 남궁현자 선생의 천재적인 건축양식을 만끽하고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내 문광과 함께 칸초네를 들으며 춤을 추고, 조용히 차를 마시며 오후를 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근세는 사람처럼 살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박탈당했을 뿐, 괴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기생충>이란 텍스트가 조금은 덜 유희적으로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봉준호는 영화 내내 체제를 향한 깊은 환멸을 보여줬지만, <설국열차>에서처럼 다 뒤집어 엎자는 무정부주의적인 해법조차도 제시하지 않고 체념하는 듯 보였다. 봉준호는 "상생, 공생이 될 수 있는 관계가 왜 기생이 될까"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이야기했다. 전작에서 체제를 뒤집어 엎자고 한 사람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얘기하는 것에 그친 건, 이미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나, 체제를 바꾸자는 구호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기택은 근세가 그랬듯 지하실에 숨어들어가 아들 기우(최우식)가 제 메시지를 수신하기를 바라며 기약 없이 장문의 편지를 모르스 부호로 찍어 보내는 신세가 되었고, 기우는 "아주 돈을 많이 벌어" 그 집을 사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근본적인 계획"이랍시고 세운다. 그 집은 고졸의 전과자인 기우가 몇 번의 삶을 반복해서 살며 그 생애 내내 일을 한다고 해도 살 수 없는 가격의 집이다. 물론 기우도 그걸 알 것이다. 내가 읽은 <기생충>은, 끊임없이 계급 추락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사느라 서로 적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끼리도 연대할 수 없는 지경이 된 시대에 대한 봉준호의 탄식이었다. 하다못해 근세의 구조신호라도 들어야 한다는 절박한 당부였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다 나 같지는 않았다. 전 세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엄청난 흥행을 몰고 다닌 영화였으니, 이를 유희적으로 읽고 즐기려는 이들이 많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누군가는 그 끔찍한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남궁현자 선생의 마스터피스' 저택을 보면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얻었고, 누군가는 영화 속 명대사들을 성대모사하며 키득키득거렸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어떤 식으로 즐길 것인지 정해놓은 건 아니니까.
하지만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를 유용해 사적인 식사에 초밥 10인분을 배달시킨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욕지기가 일었다. "그 집 식구들만 먹는다고 하기에는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 집 식구 말고 다른 식객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재명 후보의 최측근 배씨(전직 경기도 총무과 5급 사무관)은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기생충이 있다고 생각해. (자택) 밑에 사는 기생충이 있든지. 뭐가 있어."
그것이 진심이든 가식이든, 이재명 후보는 자신이 흙수저로 시작해서 소년공으로 일했으며 지긋지긋한 가난을 통해 성장했다고 말해온 사람이다. 가지지 못한 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말해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가장 가까운 측근은, 초밥 10인분 배달을 의심스러워 하며 "밑에 사는 기생충이 있든지"라고 말했다. <기생충> 속 박사장네가, 김기택네가 근세를 보는 시선을 고스란히 답습했다. 빈곤을 혐오하고, 빈자를 벌레로 바라본다.
영화 속 박사장은 문광이 맨날 식사를 2인분씩 하는 게 유일한 흠이었다고 했고, 그래서 충숙 또한 근세의 존재를 알게 되자 '그래서 2인분씩 먹었던 거구나'라고 바로 문광을 비난했다. 하지만 적어도 문광의 주장에 따르면, 오근세의 입에 들어가는 음식은 죄다 문광이 자신의 월급으로 산 것이었다. 근세는 박사장네 물적 토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기생충'이라는 비난을 받을 사람은 아니다.
안다. 이 사건에서 진짜 버튼이 눌려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경기도지사의 일가가 도의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도로 유용하고, 별정직 공무원을 머슴 부리듯이 사적인 일에 부렸다는 점, 공적 권력의 사유화가 가장 크고 심각한 문제지. 하지만 나는 '기생충'이라는 단어에 가장 크게 버튼이 눌렸다. 언어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유 방식을 폭로한다. 이제 나는 <기생충>이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계급에 대한 편견과 빈곤혐오를 조장했다는 내 친구들의 지적에 겸허하게 동의하기로 한다. 슬픈 일이다.
(2022년 2월 14일, 페이스북 글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