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꾸 유만주(1755-1788)의 <흠영(欽英)>을 발췌해 적고 관련 유물을 전시했던 서울역사박물관 전시가 생각난다. 유만주는 스스로 일생 이렇다 할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던 사람이지만, 자신이 쓴 <흠영>만큼은 자기 자신보다 더 고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하루하루 주어진 날들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매일의 일상과 생각을 기록해 남긴 13년 간의 일기는, 꽃부리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을 흠모하며 살겠다는 한 선비의 의지로 가득하다.
유만주는 때로 자기보다 잘 된 이들을 질투하는 마음이나, 구하고 싶은 책이 책방에 안 들어와서 화가 난다는 속내도 일기장에 적어넣고, 돈만 밝히는 것 같은 세상이 꼴 보기 싫다는 시시콜콜한 불평도 적어넣고, 어디 고을 살던 서출 여자가 학문이 깊고 글씨가 수려했는데 서출에 여자라서 학문을 펼치지 못한 게 조선의 한계가 아니겠느냐는 분노도 적어넣었다. 그렇게 13년 동안 쓴 일기가 총 스물 네권이었다. 시험 운이 없어서 매번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던, 사관이 되고 싶었던, 만성적인 우울증과 자기 비하에 휩싸여 있던, 소심하기 짝이 없어서 부동산 사기를 당하고도 그것을 제대로 따져 묻고 화를 내지도 못했던 18세기 서생의 삶이 그 스물 네권 안에 담겨 있다.
유만주의 마지막은 고통스러웠다.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유만주는 미어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일기에다가 '앞으로 7개월만 더 이 일기를 쓸 것'이라고 적어넣는다. 어린 자식이 세상을 떠났을 때 부모가 가져야 하는 애도의 기간이 7개월이므로. 아들의 병세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자신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애통함, 자책이 가득한 글귀를 적어넣고, 아들이 보고 싶다는 글들을 쓰다가, 아들이 남기고 간 글귀를 필사하기도 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 같은 것들을 끄적였다. 그렇게 7개월이 지난 뒤, 유만주는 부모님과 아내, 남은 자식들을 물리고 방 한 가운데에 조용히 누워 자는 듯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마 마지막 7개월을 간신히 살아냈던 거겠지.
만 33년 11개월 25일을 살고 떠나며, 유만주는 아버지 유한준에게 <흠영>을 모조리 태워달라는 말을 남겼다. 유만주의 기준으로 <흠영>은 완성된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기를 쓰던 유만주는, 어느 순간부터 아들을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세상의 소식과 지혜와 견문을 기록해두었다가 아들에게 물려주면, 아들이 그것을 읽고 더 많은 것을 알고 배우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아들이 세상을 떠난 탓에, 유만주는 <흠영>을 완성할 기력도 이유도 잃었다. 날아가 박힐 과녁을 잃은 살이 날렵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유만주는 자신과 함께 <흠영>도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유한준은 차마 그러지 못한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손자에 이어 아들마저 그렇게 가버린 자리에, 남은 거라고는 <흠영> 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유한준은 <흠영>을 정리하고 발췌하고 필사해서 책으로 묶어낸다.
내가 자꾸만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를 떠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들 유만주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되던 날, 유한준이 아들의 제사를 맞이해 지은 글 '제대상문(祭大祥文)'에는 그 절박한 심정이 담겨있었다. 나는 전시의 제일 마지막에 국역본으로 새겨져 있던 '제대상문' 앞에서 오래오래 서 있었는데, 가족을 잃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도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의 슬픔과 그 슬픔을 뛰어넘겠다는 남겨진 자의 의지가 함께 아로새겨진 글이었기 때문이다.
(전략)
내가 실로 지극히 미욱하고 지극히 어두우며 지극히 완고하여 죽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서 여전히 밥을 먹고 여전히 살아 있구나!
(중략)
아아, 애통하도다! 너는 죽고 나는 산 것이 3년이 되었단 말이냐? 이 생애 어느 날 다시 부자가 된다는 말이냐. 나는 이미 늙었다. 가슴 속에 얼음과 불을 끌어안고 있으니, 세상에 오래 살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죽는 날에 너희 부자와 함께 지하에서 노닐어, 여기서 다하지 못한 인연을 다시 이으려하니, 너는 잠시 기다리기 바란다. 말을 그치노라.
글에서, 유한준은 아들의 유언을 지키지 않은 까닭을 설명한다.
(전략)
너는 없애려고 하였으나 내가 차마 그러지 못하였다.
(중략)
아아! 사람들 중에서 실로 비록 장수하였으나 장수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자들이 있으니, 이는 칭송할 것이 못된다. 만약 네 책이 다시 나온다면 네가 비록 요절하였지만 그 수명이 무궁할 것이니, 내가 비록 슬픈지 안 슬픈지 말하지 않는다 하여도 또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후세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이 아픔이 더욱 깊다. 나는 실로 끝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겠구나!
(후략)
그러나, 알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유한준은 이를 악물고 아들의 글에 대한 평을 남긴다. 그건, 어쩌면 그렇게 되게 만들 것이라는 의지에 가까운 말이었을 것이다.
그 말이 대개 깊이가 있고 정소하여 끝내 반드시 썩지 않을 것이다.
가끔씩, "가슴 속에 얼음과 불을 끌어안고 있으니"라는 문구와 "끝내 반드시 썩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불쑥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때로는 끝내 기록하는 사람이 승자가 되어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고 믿는다. 당대의 기준으로나 지금의 기준으로나, 일평생 벼슬길로 나가지도 못하고 대단한 학문적인 성취를 남기지도 못한 서생 유만주는 승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기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글이 썩지 않을 것이라 믿은 아버지 유한준의 정리를 거쳐 그의 글만큼은 240여년을 넘어 오늘까지 살아있다. 그래서 가끔 쓰는 일이 막막해질 때면, 가슴 속의 얼음과 불을 끌어안고 아들의 글을 '끝내 반드시 썩지 않'은 글로 살려낸 아비의 글을 생각한다.
(2021년 2월 11일. 페이스북에 적었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