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의 신년 기획 '문명인이 됩시다'(클릭)에서 100대 '문명' 캠페인로 세운 내용들은, 그 면면에서 반대할 건 하나도 없다. 죄다 시급한 의제들이다. 100개를 읽으며 하나하나 몸서리를 치곤 했다.

다만 교양의 부재, 야만의 상태를 '이것이 왜 불의인지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리소스가' 필요한 사회적 미몽의 상태, 한국인의 문해력 여부에 대한 루머를 언급해야 할 정도로 상호이해가 부재한 상태이기 때문인 것으로 진단한 대목이나, '합리적이면서 윤리적으로도 건전한 명제들이 촘촘히 공유되고 이를 근거 삼아 진행되는 소통의 토대'를 만들어야겠기에 '고루해 보이는' 걸 안다면서도 '계몽'이란 말을 호출하는 대목은 다소 동의하기 어려웠다.




조악한 견해나마 밝히자면, 한국이 야만의 상태인 건 저 100대 '문명' 아젠다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살면서 저 100가지 중 하나도 안 지켜도 손해를 안 보는 사회적 권력 계급, 저걸 굳이 지킬 필요를 못 느끼는 인간들이 실존하기 때문에 그렇다. 장유유서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막 대해도 될 권력을 지닌 '연장자', 적당히 지저분하게 살아도 "사내자식이 너무 깔끔 떠는 것도 보기 싫다"는 식의 말로 눙칠 수 있는 '시스젠더 남성', 상대 성을 대상화하고 희롱할 권력을 독점한 '이성애자 남성', 손님은 왕이라는 기괴한 소비자지상주의에 기대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진상을 부릴 권력을 청구하는 '소비자' 등. 만인에 대한 만인의 상하관계 나누기, 위계서열 정하기 등등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의 실존을 허한 권력의 작동형태야말로 저 100대 '문명' 아젠다를 낳은 배경이 아닐까?

진짜 무서운 건 교육이나 매너의 부재 때문에 자기 통제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 약자의 입장을 상상해보고 헤아려 자신을 통제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태, 몰라서 안 지키는 게 아니라 딱히 지킬 필요가 없어서 안 지키는 상태, 더 소름끼치게는 '몰라도 되는', 하여 '안다고 달라질 것 없는' 상태다.

그래서 이번 아이즈의 '문명인이 됩시다' 캠페인이 호소하는 내용에 백번 동의하면서도, 그 형식이 과연 효과적인 형태인가의 지점에선 동의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아젠다를 지키지 않는 이들을 향해 '미개'하다고 외치며 손가락질해도, 그들은 대체로 이미 그걸 지킬 필요를 못 느끼게 만드는 권력의 성벽과 그걸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의 보호 안에 있어서 별 타격을 안 입을테니까. 권력 계급의 문제와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지 않으면, 저 100개의 명제는 아마 불편과 불쾌를 호소하는 우리'만'의 메아리 없는 자족적 한탄이 될 공산이 크다. (여기서 '계급'과 '이데올로기'라는 단어가 쓰였다고 반사적으로 사회주의나 맑시즘을 떠올리는 분은... 설마 안 계시겠지.)

새벽에 파벨라에 실린 '김강기명의 Das Kontrasoziale - "문명하셨습니다."'(클릭)를 유심히 읽었다. 글 전체에 다 동의하진 못 하지만, 한 대목만큼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주목해야 할 것은 내용이 아니라 (수행적인) 형식이다. 사실 캠페인의 진짜 내용은 형식이 빚어내는 것이다."


p.s. 한 가지 추가로 인용하자면. 진짜 우울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페친 Sunhong Hwang 님의 언급이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이러한 대립항이라도 들고 비웃기라도 해야 뭔가 충격 비슷한 거라도 가해지고 문제가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이다."

잠시 눈물 좀 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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