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룩이의 스케일링 예정일이었다. 치주염이 심했다. 고양이에게 스케일링이란 개념을 설명할 수 없으니 전신마취가 필요했고, 전신마취가 필요하니 13시간 금식을 시켰다. 아이는 밤새도록 짜증을 내다가 병원에 갈 기미가 보이자 침대 밑에 들어갔다. 꺼내는데 한 세월이 필요했다. 시위의 여파가 없진 않아 길은 평소보다 막혔고 얼룩이는 교통체증 내내 겁에 질려있다가 병원에 도착했다.


2. 환자의 보호자라서 병원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내가 아는 모두가 집회에 나가 차벽에 막히고 최루액을 뒤집어 쓰는 동안, 나는 그 현장에서 한발자국 정도 떨어진 홍지동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북악산과 북한산을 병풍처럼 거느린 홍지동은 너무도 평온해서 10만이 모인 집회 소식 같은 건 와닿지 않았다. SNS를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었을 것이다. 가당치도 않게 김수영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켜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


가당치 않은 비교다. 김수영은 평생을 시로 저항하기라도 했지. 난 갖가지 핑계로 늘 현장에서 한발쯤 떨어져 있다. 오늘 먼지보다 작고 초라한 건 나였다.


3. 예정보다 조금 이르게 걸려온 전화. 스케일링 중 미심쩍어 확인해보니 한쪽 어금니 아래 잇몸이 거의 텅 비어있다시피 해서 심하게 염증이 있다고. 발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저스틴 귀도 귀지만 얼룩이 이도 이구나. 내가 아이들을 건사할 능력도 자격도 없단 자괴감에 잠시 시달리다 발치를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예정보다 수술 시간은 길어졌다.


4. 마취가 덜 깬 얼룩이는 평소와 달리 울지도 않고 얌전하게 케이지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해서 조심스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버스는 시위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루트를 타고 교통체증 없이 집에 도착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그 길을 지치고 우울한 나와 마취가 덜 깬 얼룩이가 말 없이 달려왔다. 아이에게 물을 주고 밥을 주고 양치를 시키고 쓰다듬어주고 SNS에 들어와 보니 누구는 직사로 물대포를 맞고 머리를 다쳤고 누구는 팔이 부러지고 인대가 나갔단다. 전남에서 올라온 예순 아홉의 농민은 이미 쓰러진 이후에도 경찰의 최루액 조준사격을 당해 생명이 위독하단다. 예순 아홉. 내 어머니와 동갑인 그를 생각하다 그 자리에 내 어머니를 대입해보았다. 마음 한 곳에 구멍이 났다. 미리 예고한 집회 루트는 죄다 경찰이 막아버렸다는 성난 외침과, 신고한 장소를 벗어나니 경찰이 강경진압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비아냥이 타임라인에 어지러이 섞여있었다. 세상이 내 작은 고양이의 어금니처럼 기반을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언제 뽑혀도 이상할 게 없는 모양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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