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1 : 단상들

2015.06.11 11:37

0. 요즘 많이 우울하다. 일이 뜻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일이 뜻처럼 잘 풀리지 않는 건지 종종 헷갈린다. 원래 원인과 결과는 자주 서로의 위치를 바꿔가며 꼬리를 무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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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전히 내가 그럴싸한 헛소리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은 가시질 않는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어느 정도는 늘 가지고 있어야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데, 가끔 그 불안이 과할 때가 있어 키보드 앞에서 몇 시간이고 한 자도 못 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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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즘 들어 원칙과 타협에 대해 생각해본다. A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고민하던 이들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A'라는 해답을 내면, 어떤 이들은 A' 또한 A라는 문제를 더 교묘한 방식으로 재생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진정한 해결은 B라고 주장한다.

A로 발생하는 문제를 A'로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맞다. B가 더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것도 맞다. 다만 B를 성취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할지 장담할 수 없으며, B를 이룩하기까지 A라는 문제는 개선 없이 지속되거나 더 악화된다. A'는 해결책을 가장한 또다른 문제일 수 있지만, 당장 A로 발생하는 문제를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저감시킬 수 있다.

과거에는 B를 지지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가면 갈 수록 B 대신 A'를 지지하는 것 같다. B의 급진성이나 아름다움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A' 기저에 깔린 기만에 대해서도 안다. 그러나 난 종종 B만이 길이고 생명이라 말하는 이들에게서, 언제 이룩할 수 있을지 장담도 없거니와 구체적인 방법론도 없는 B를 이루기 위해 당장 A라는 문제로 신음하는 이들의 절박한 고통을 외면하거나 혹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착취하는 엘리트의 모습을 발견한다. 근본치료를 해야 하니까 대증요법 따윈 무의미하거나 천박한 타협이라 외치는 이들. 난 종종 이들이 애초에 A라는 문제지점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B라는 답을 미리 정해놓고 루트를 무리하게 역산하는 건 아닌가 의심하곤 한다.

왜 이니셜 놀음을 하냐면, 이게 어느 한 섹터에서만 작동하는 원리가 아니라 곳곳에서 프랙탈 구조처럼 발견되는 원리라 여기에 어떤 단어를 넣어도 그럭저럭 들어맞기 때문이다. 종교, 사회, 정치, 문화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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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말로 쌓은 빚이 많다. 이 빚을 어찌 다 갚을까 가끔 잠자리에 들면 눈을 감기가 아찔하다. 다만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억눌린 세상에선, 뭐라도 떠들어 전체 판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게 조금이라도 세상에 기여하는 거라고 믿어보는 거다.

보통 입만 산 새끼는 조용히 닥치고 있는게 돕는 거란 이야기들을 하는데, 입만 산 새끼는 입이라도 살았으니 입으로라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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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즘의 지배적 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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