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에서 올해로 건너오는 무렵, 후배가 내 생일을 맞이해 편지를 한 통 써서 줬더랬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작년 자신이 힘들 때마다 내가 건넨 보잘 것 없는 위로의 말들이 자신에겐 아주 적확한 지점을 타격하는 위로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끼는 후배이고 많이 위로를 해주고 싶었으니 그 위로의 마음이 통했다면 참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가하면 F는 내게 나의 관대함에 늘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게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빚졌으니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관대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또한 내가 그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

반면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연락을 소홀히 했던 - 그래선 안 됐던 - 몇몇 친구들은 내게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연락을 주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들 입장에선 아마 그 또한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당황했고,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뭐, 사람이 바쁘다보면 마음처럼 사람을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누구에게는 적확한 지점을 타격하는 위로를 건네고 누군가에겐 관대함을 베푸는 동시에 누군가에겐 연락도 주지 않는가? 마음 속에 나도 모르게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멀고 가까움을, 가볍고 무거움을 나눈 건 아닐까? 더 가까이 있다고, 일 때문에 더 자주 보게 된다고, 그런 사람들은 더 잘 챙기고. 눈에서 멀어지는 친구들에게는 대강 하면서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어 줄 것'이라 생각한 건 아닐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고. 하지만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은 사람들에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뒤늦게 '미안해. 앞으론 더 자주 연락할게' 같은 소리나 하는 사람 말고 말이다. 언제나 다짐만 그럴싸하고 실천의 영역에선 개판이지만.



2. <한겨레>에 칼럼을 쓰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는 말했다. 남을 흉보는 글보다는 남을 칭찬하는 글을 더 쓰면 안 되겠느냐고. 아들이 누군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비아냥거리는 게 어머니의 미감에 거슬렸던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들이 뱉은 모진 말이 부메랑처럼 아들에게 돌아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거겠지.

그래서 '술탄 오브 더 티브이'는 대체로 누군가를 욕하기보단 누군가를 칭찬하는 글로만 채워왔던 것 같다. 그러나 '술탄 오브 더 티브이'에 내가 고운 글을 쓰느냐 모난 글을 쓰느냐와 무관하게, 관찰해 본 결과 글 밑에 달리는 리플은 대체로 5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a. 연예인 A를 칭찬하는 글을 A의 팬 B가 봤을 때: 개념글. 기자니뮤ㅠㅠㅠ 금소뉴ㅠㅠㅠㅠ
b. 연예인 A를 비판하는 글을 A의 팬 B가 봤을 때: 미친 새끼, 지가 직접 해보라고 해./이XX 안티인가?
c. 연예인 A를 비판하는 글을 A의 안티 B가 봤을 때: 아 완전 사이다임 글빨 ㅎㄷㄷ.
d. 연예인 A를 칭찬하는 글을 A의 안티 B가 봤을 때: 얼마 받아먹으면 이런 글 써주냐? 존나 빨아주네.
e. 연예인 A에 대한 글을 A에 관심 없는 사람이 봤을 때: 스압이네 3줄 요약


인터넷 포털에서,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에서 내 기사가 얼마나 읽히는지 자료를 따로 받아본 적은 없다. 다만 적어도 인터넷에서 내 글을 받아본 사람들의 주된 반응이 저 모양 저 꼴이라는 건 한 가지를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누군가 칭찬해주고 자신이 싫어하는 걸 누군가 비판해주길 바란다. 그것도 되도록 권위있는 창구로부터. 페북 글이나 트위터 글보다는 파워블로거의 글이 낫고, 파워블로거의 글보다는 신문 지면에 실리는 글이 더 낫다.

먹고 살려면 이런 사람들의 반응도 분명히 살펴야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진 않다. 읽어주는 사람들에 맞춰 장단을 추다보면 정말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고 결국 길을 잃어버리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자꾸만 드는 1/4분기였다. 난 대체 내 글의 이상적인 독자로 어떤 집단을 상정하고 있는 걸까?



3. 밤참을 먹으려고 라면을 꺼내 부엌으로 나갔더니, 이미 30분 전에 꺼내두었던 라면이 떡 하니 싱크대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머릿 속에 넣을 수 있는 정보의 총량이 있어서, 다른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자꾸만 밀려나간다. 점점 사람의 이름을 까먹게 되고, 사람의 얼굴과 이름과 직위를 매치시키는 게 어려워진다. 고양이들 밥은 제 때 주었는지, 병원 예약은 몇 시였는지. 되도록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써두려고 하지만 어째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화투라도 쳐야 하는 건가.



4. 어제 F에게 한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평화시였다고 가정하고, 동시대에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윤동주보다는 서정주와 더 친했을 것 같아. 내 성격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거든. 아니, 화식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게 인간인데 어떻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라? 그게 가능키나 한 이상인가?

차라리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쪽이 더 내 성격엔 맞으니까.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그걸 수긍하는 사람 쪽이 더 편해.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서 윤동주의 시를 읽을 때는 존경심 뒤에 위화감이 고개를 들고, 서정주를 읽을 때는 도덕적 경멸의 한 구석에서 슬그머니 동류의식이 고개를 들지. 아마 그래서 내가 중요한 순간엔 비겁한 선택을 하는 사람인 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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