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A야.

몇 년 전 새로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는 너의 말에 난 누구냐고 물었고, 그게 너와 같은 지정성별을 지닌 사람이란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 전에 이성애 연애를 했었던 너니까, 당연히 그 연장 선상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건 네가 그 사실을 내게 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해줬다는 거였다. 너에겐 내가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이었던 걸까. 내가 네게 그런 신뢰를 받아도 좋은 사람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조금은 황송했다.

네가 네 성적 지향을 이야기해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해서 난 네가 무언가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네가 양성애자인지 범성애자인지 헷갈려 할 때, 네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할지 말지 고민할 때, 커밍아웃 이후 개운하게 지지를 받지 못해 속상해할 때 난 너의 옆에서 널 응원하고 지지하고 때론 위로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유독 껴안는 걸 좋아하는 너희 커플은 공공장소에선 껴안기 위해 늘 뭔가 핑계를 대야 했다. 오랜 유학길에 떠나는 친구를 마지막으로 안아주는 친구처럼, 좋은 일이 생겨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겨워 서로를 부둥켜안는 동지처럼. 나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고 공공장소에서 포옹하고 때로 입맞추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마음을 숨기거나 다른 무언가로 위장해야 하는 너희를 보는 건 늘 속이 많이 상하는 일이었다. 물론 쓸데없이 연기력만 준수해지는 너희의 속내만 하겠느냐마는.

세상은 가도 가도 너희에게 잔인한 일로만 가득했고, 그런 일을 마주할 때마다 난 너희를 떠올렸다. 난 여고생들이 입맞추는 장면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소환되었을 때 너를 먼저 떠올렸고, 담당 프로듀서가 방심위원들 앞에서 "나도 개인적으론 동성애가 싫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네 눈치를 봤다. 난 육군이 군 내 동성애자들을 추적해 조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구속해 군사재판에 넘길 때 널 먼저 생각했다. 네가 "성 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우팅 당하고 그로 인해 차별과 폭력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이성애자들에 비해 자살을 기도하는 비율이 높다"는 기사를 유심히 읽을 때 가슴이 덜커덕 내려앉았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토론회 도중 동성애자에 대해 실언을 했을 때,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이 실언을 변호한답시고 "나도 동성애자 싫다"며 혐오발언을 일삼는 걸 보며 너와 너의 연인을 떠올렸다. 어쩌다 세상은 이 모양이 된 걸까. 그저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하고 싶은 것뿐인데.

네가 내 첫 LGBT+ 친구는 아니었기에 그 전에도 난 꾸준히 이 이슈에 대해 쓰고 말하며 살아왔지만, 너의 고백을 들은 이후 난 그 전보다는 더 많이 쓰고 많이 말하게 됐다. 내 직업이 쓰고 말하는 거니까, 내가 너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였다. 사실 그게 지금까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확신이 없다. 나조차도 익숙하고 오래된 편견을 다 벗지 못해 부끄럽고 민망한데, 내가 누구에게 누구의 삶을 설명 하겠다는 걸까. 아직까지 "생물학적 성별"이란 단어를 "지정성별"로 대체하는 건 익숙하지 않고, 성 확정수술을 아직도 부지불식 중에 "성 전환수술"이라고 말하는 나다. 내 글이 세상의 편견을 부수는 데 그리 큰 역할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IDAHOT이다.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pia, Transphobia and biphobia"의 준말이라고 하니,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 바이포비아에 저항하는 국제 행동의 날"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다. 우리 말로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라고 쓴다고 하네. 처음 IDAHOT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난 반사적으로 영화 < My Private Idaho >를 떠올렸는데, 정말 무슨 연관이 있어 붙은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난 오늘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군형법 92조 6항 '추행죄'로 재판을 받으며 징역 2년을 구형받은 A대위의 무죄 판결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쓰고, 수익금을 재판 비용에 쓴다는 뱃지 공동구매에 동참하고,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충분히 행동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마 언제까지라도 그럴 것 같다. 프라이드 행진에 함께 나가도, 집회에 참석해도, 언제까지나 "조금 더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겠지.

이런 날, 당사자인 성소수자가 아니라 그저 지지자에 불과한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인 사람이 이런 글을 쓰는 게 과연 적당한 일인지도 잘 모르겠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남자가 이야기할 때 그나마 악플이 덜 달리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조차 위계가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에 입맛이 쓰고 씁쓸할 따름이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뿐이니 부득불 쓴다. 누구라도 이 야만을 멈춰야 한다고 외쳐야 하겠기에, 별 자격도 없는 내 서툰 목소리라도 더해보려 한다. 난 너희와 함께 더블 데이트를 하는 상상을 한다. 부탁 받은 대로 너희 결혼식에 주례든 사회든 서 주는 상상을 한다. 너희가 공공연하게 애정표현을 과시하는 걸 보며 "어우 닭살 돋아"라고 놀리는 상상을 한다. 내가 널 A라는 알파벳 뒤에 숨겨서 부를 필요가 없는 날이 되면, 우리는 너와 너의 연인이 겪어야 했던 야만의 시대를 옛 이야기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제 성적 지향을 숨긴 적이 없으나 여전히 가족들에겐 미처 말하지 못한 또 다른 친구 B, 자신이 헤테로섹슈얼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청소년기를 자책과 고통 속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엉엉 울었던 C, 그 뒤로 한없이 이어질 수많은 알파벳 뒤에 숨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 깊게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난 이렇게 글 쓰는 걸 멈추고 앉아 조용히 들을 것이다. 마침내 알파벳을 떼고 세상 앞에 응당 받아야 하는 제 몫의 존중을 청구하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오래오래 들을 것이다.


너의 친구
승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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